차면시설은 인접대지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2미터 이내에 이웃 주택의 내부가 보이는 창문, 출입구, 기타 개구부를 설치하는 경우 이를 가릴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건축법 시행령 및 민법에는 2미터 이내의 거리에 이웃주택의 내부를 관망할 수 있는 창이나 마루를 설치하는 경우 적당한 차면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축법 시행령 제55조(창문 등의 차면시설)는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2미터 이내에 이웃 주택의 내부가 보이는 창문 등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차면시설(遮面施設)을 설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민법 제243조(차면시설의무)에도 해당 내용이 규정돼 있다. 이는 거주민의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막기 위한 규정이다.
설계의뢰로 현장답사를 위해 현장을 찾아 골목길을 걷다 보면 차면시설이 설치된 건축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위 내용의 법조항으로 인해 적게는 건물의 한 면을, 많게는 4면을 차면시설로 둘러싸인 것을 볼 수 있고, 이 또한 초속 30∼40미터의 강풍이 불어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튼튼하게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 차면시설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프라이버시권)이 한편으론 나와 우리 이웃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역기능(생명위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 때면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설계한 건물에 불이 나서 방에 있는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소방대원이 사다리를 설치해 구조키 위해 차면시설을 먼저 제거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해보자. 1초가 아까운 시간에 골든타임을 놓쳐서 인명사고가 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내가 도면에 표기한 차면시설로 인하여 한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면, 또 그로 인해 불의의 사고라도 생긴다면 자책감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화재가 난 차에 시민들이 합심하여 한 생명을 구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나도 그 순간 그분들처럼 용기를 낼 수 있을까를 자문해봤다. 만약 그런 용기조차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시민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이런 설계(차면시설)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가.
우리 건축사를 포함하여 이에 종사하는 모든 관계자분들께 이 법 조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동안 내가 설계했던 건축물들의 무게가 나의 어깨와 마음을 아프게 내리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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