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면
- 오유균

치켜든 머리가 있다, 죽어서도
웃는 머리가 있다

줄을 서서 큰절을 하고
뒷걸음으로 물러나는 머리가 있다

손바닥보다 큰 상추 위에 쌈장과 마늘을 얹고
서로의 안부를 우적우적 씹으며
묻는 머리가 있다

입가에 쌈장 묻은 줄 모르고
화살표 같은 나무젓가락을 제 명치 쪽으로 놓고
서로를 바라보는 머리가 있다

흰 종이컵에 소주를 붓고
제 웃음을 받아두겠다는 듯이
제 웃음을 삼키겠다는 듯이 찡그리는 머리가 있다

구멍이란 구멍에
지폐를 꽃처럼 꽂은 머리가

목에 톱질 자국이 있는 머리가
정면에서 이빨을 보이며
웃고 있다

- 『리셋』중에서 / 오유균 시집 / 시인동네 / 2018년
고삿상에 올라간 돼지머리의 풍경을 이렇게 재치있고 해학적이며, 섬뜩하게 그려냈다. 웃음 뒤에 목이 서늘한 느낌, 웃다가 목에 날 선 칼이 바짝 다가온 느낌, 그런 걸 우리 연희에서는 ‘골계미(滑稽美)’라고 한다. 돼지머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행위와 돼지머리의 자조, 대상으로서의 돼지머리가 골고루 섞여서 마치 돼지머리의 인류학적 보고서를 대하는 느낌도 있다. 이 오래된 정면이 참 새삼스러워진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