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의 독창적인 주제나 해법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며, 최근 건축계에서 회자되는 여러 주제와 개인적인 제안이다. 협회이사로써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지만, 이 글에 우리의 희망을 담는다.

사 례

1) 각 분야의 설계 및 계약 분리요구 : 전기설계에 이어 통신분야 설계 분리발주 요청법안이 입법예고 중이며, 구조기술사의 구조도면작성 및 감리요구 등이 거세지고 있다. ‘설계는 건축사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자기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건축에 관한 전반적인 행위’라는 정의가 무너지고 있다. 건축사는 창의성과 설계 이전의 노력과 투자는 배제되고, 건축물의 도면 인허가작업 및 건축물 완성을 위한 단순 조정자 정도로 남을까 우려된다.

2) 턴키, PQ제도 : 발주처의 객관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된 제도의 문제점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턴키제도의 폐해는 많이 인식되어 정부 측에서도 대안을 찾는 것 같아 지켜봐야겠지만, PQ제도는 충분한 아이디어와 능력을 갖춘 설계자도 과도한 조건에 의하여 입찰자격 자체가 극히 제한적이니, 대안이 필요하다.

3) 불합리한 설계 계약 조건 : 지자체에서 용역공고시 발주청 임의로 기본 설계비를 빼거나 작업량을 하향하여 발주하거나, 실시설계시 사업비를 증가시켜 공사비는 예산확보하고 설계비는 증액하지 않는 사례(협회게시판 참조)와 서울의 어느 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 현장설명 조건에 설계 낙찰자는 입찰보증금을 사업경비 충당을 위해 무이자 대여금으로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건축사는?

우리 건축사는 건축사법에 의하여 보호, 감독받는 대상이지만, 건축의 행위는 건축법에 의한 건축물이며,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문화예술이다. 건축관련법에서 건축정책은 건축의 공공성을, 문화예술진흥법에는 문화예술 진흥을 강구, 보호, 육성 등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공공성이나 예술진흥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생필품을 파는 동네 소매점을 보호하기 위해 SSM을 제한하는 법을 두고 언론과 국회에서 요란하더니 관련법이 통과되고, 식당 등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실태에 관한 기사나 정부대책은 많다. 하지만, 공공성을 띤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사는 공공성보다 편의와 시장 논리에 의해 시공자가 설계자를 결정하고, 시장원리에 의한 끝없는 가격경쟁을 요구받고 있다. 이로 인해 건축사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심각하게 생계를 위협받으며 건축계의 공멸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우리의 현상이 여론화 된 적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협회는?

협회 입장에서 보니 입장과 기대치가 서로 다른 회원들의 욕구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해결책은 커녕 의견 조율하기도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협회는 하는 일이 많다. 이사회와 여러 위원회는 우리의 현안 및 미래에 대한 수많은 주제들의 검토, 토론, 정책수립, 제안하며, 홍보와 우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사무국 직원들은 실무적인 업무를 맡아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안타까울 만큼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도 있다. 이와 같이 협회에 관련된 많은 이들이 열심히 하는데, 회원들이 느끼는 협회는 왜 회원들의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하고 거리감이 느껴질까?

재정립 필요

경제분야에서 지나친 규제완화와 시장을 맹신한 글로벌 기준을 바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위기를 초래하여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를 불러일으키고,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적절한 규제와 시장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국민들은 공정사회를 부르짖고 있다. 건축시장도 지나친 규제완화와 최저가격이 최고라는 맹신에서 벗어나고 공정사회로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힘을 모으고 필요하면 연관단체들과 힘을 합쳐 설계의 정의를 재정립하고, 건축사의 역할을 자리매김하여 그에 적합한 역할과 대가기준을 정립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건축의 공공성과 창의성은 무시되고 건축사의 업역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협회의 설립목적은 회원의 품위보전과 권익증진이다. 이를 바탕으로 공익에 이바지 해야한다. 그러므로, 건축사들이 처한 구조적으로 잘못된 상황을 명실상부한 전문가 집단으로 업계의 이익을 대변할 뿐 아니라,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회원들의 장애물을 해소할 책임이 있다. 협회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만이 아니고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협회와 회원은 교육과 소통과 공감이 더욱 필요하다. “공감은 동정과 연민이 아니라 서민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며 무엇이 필요한 지 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의 정치라는 정치인의 말을 귀담아 듣자.

회원은 푸념섞인 한탄만은 제살을 깍는 첩경이므로 건축사 개개인은 스스로 노력을 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협회를 만들었지만 협회가 모든 걸 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협회를 중심으로 현실과 미래를 위하여 제안하고, 소통하고, 협동하며, 개인적으로는 지속적인 재교육으로 자기 발전을 도모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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