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에 대한 중요성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개념이 확대되면서 주목 받고 있다. 물론 인문학적 가치에서 근본적 출발이 있지만, 과거에 비해 주목 받는 것은 관광산업과 연계성에 그 이유가 있다.
관광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한다. 관광은 그래서 영화와 사진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다. 17, 18세기 유럽의 부르주아가 탄생하면서 이들의 지적 유희는 역사적 배경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 가장 큰 지적 유희는 관광지였다. 시각적 정체성은 유럽인들에게 자신들의 뿌리를 각인 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서구에서 고전, 즉 클래식 Classic은 무엇인가? 바로 그리스 로마이며, 바로 파르테논 신전과 판테온에서 출발한다.
우리 역시 잠잠하던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해 대중적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부터다. 90년대는 엘리트보다는 대중들의 시선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 공간이 확산되었다. 우리 전통 건축인 한옥이다.
물론 한옥이 쉽게 대중적으로 다가선 건축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외세에 의해 개방된 덕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기간을 거쳤고, 이로 인한 열등감은 건축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사이 우리 스스로 건축 환경을 파괴했고, 살아남은 한옥 동네는 몇 안되었다. 관광의 대상이 되면서 도시의 기호공간으로 주목받게 된다. 서울 삼청동과 가회동, 북촌 일대에서 시작된 전통 도시 공간과 한옥에 대한 시선은 급속도로 대중화 되었다. 여성지나 패션지 등에서 한옥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가장 트렌디한 화보의 배경으로 한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옥이 화제의 중심에 서면서 부동산 투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정치인들의 정책 화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문제는 항상 그렇듯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한옥 주목이다. 정치인들의 주목은 곧바로 한옥마을 만들기로 시작되었고, 한옥 보존 지구 등 지구단위개발 계획이 만들어졌다. 급하게 먹는 물이 체하듯 한옥 보존지구, 또는 한옥 촉진 지구 등의 도시 개발 전략과 정책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는데, 문제는 한옥은 현대 건축의 기능과 사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더라도 한옥은 과거와 현재를 대상으로 할 때 각기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과거의 존재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옥이라면 한옥적 특성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선으로 한옥이라면 새로운 해석과 재료, 디자인을 통해서 새로운 21세기 한옥적 가치가 드러나야 한다.
아쉽게도 최근의 한옥 전략은 이 두 마리 토끼잡기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재현으로 한옥에 현재의 법 기준을 강요해서 형태와 구성이 생뚱맞게 바뀌고 있다. 경직된 법적용을 강요한 한옥의 절대적 미학 기준을 변질 시켜 수준 낮은 성과물을 만들게 한다. 그런가 하면 현대적 건축으로 재해석 하는 경우도 기와나 창호 문양, 목재의 사용 등 제한적 재료와 요소를 강요해서 의도와 다른 무국적 건물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혼란의 결과는 관광객을 만족 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거주자들에게 잘못된 지식과 정체성을 보여주게 된다. 어정쩡한 과거와 현재의 조합은 이미 일본에서 1930년대 시도 되었고, 우리는 60년대 물리적 혼혈 건축을 만든 경험이 있다. 이런 건물들은 깊이보다는 표피적 드러남이었고, 전통의 깊이와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다. 전통 한옥의 특성을 담지 못할 현대적 건물이라면 차라리 건축사에게 본인의 독창적 해석이 반영된 새로운 전통을 만들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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