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된 큰아들이 보고 있던 만화책을 들고 쪼르르 달려온다. 작은아들도 뒤 따라 오며 “이차원도 있어? 일차원. 영차원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 웃으며 여느 때처럼 폭풍질문을 하며 호기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본다.
슬쩍 보는 아내를 의식하며 난 그림까지 열심히 그려가며 설명을 해줬다. “봐!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이 선들이 모여 면이 되지? 이렇게 면들이 모이면 뭐가 될까?”
건축사로서 나는 매순간 수많은 점들로 선을 그리고 면을 그리고 공간을 창출한다. 이 마술 같은 직업을 법률검토, 건축주와의 협의 등 시간과 업무에 쫓기다 보니 이 일을 단순히 직업, 즉 생계유지의 수단이자 노동으로만 치부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직업이란 기본적으로 생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회학적으로 직업은 인간의 자아관과 사회적 정체를 결정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직업학을 살펴보면 ‘경제성, 자아실현,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를 세 가지 핵심요소로 지칭한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 활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존재다. 하나 나는 내 직업을 빼놓고는 내 세계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만큼 건축사라는 직업이 내 정체성의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건축사란 타이틀이 문화나 예술의 한 분야에 속하기도 하지만, 현실의 건축사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우리네 사회는 건축사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역할들을 주문한다. 건축사란 직업이 주거환경과 도시공간을 창조하는 역할을 함에도 과연 사회적 인식이 이와 비례해 따라와 주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직업의 수는 대략 1만4천여 개 정도 된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사회적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오랜 친구가 주택 설계를 맡긴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투리 공간을 취미가 악기 연주인 그를 위한 작은 작업실로 만들어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아직도 내게 두고 두고 감사해한다.
내가 꿈꾸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이 작은 것을 위대하게 만드는 디테일의 힘을 가진 것이 아닐까? 오늘 그러 했듯 내일도 나는 수많은 점들을 시작으로 공간을 창출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 점들은 선으로 이어져 나의 미래, 우리의 미래에 도달하게 된다.
“작고 초라하게 보이는 작은 점일 지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민들레 홑씨 하나가 큰 숲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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