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나무 검은 나무
- 김지녀

흰 나무야 검은 나무야
슬픔이 길어졌다 고드름처럼 녹고 있다
목요일 밤에서 금요일 아침까지 흰 나무야
검은 나무야
거울 속에서 눈이 내렸다
목이 길어졌다 손가락과 마음이 자꾸 길어져 결국
나는 헝클어져버렸다, 눈 속에서
흰 나무야 검은 나무야
오래오래 너희들의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었다
뼈들이 만져졌다 목요일 밤에서
금요일 아침까지, 너희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전주곡이 길었다
안으로 뻗어가는 나무야 흰 나무야
뿌리가 없단다 떠다니는 나무야
검은 나무야
거울 밖에서 눈이 내렸다
나는 더욱 확고해졌다 슬픔이 단순해졌다
네 시에서
일곱 시까지, 희희낙락하는

- 『양들의 사회학』김지녀 시집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불가에는 ‘다라니’라는 것이 있다. 다라니를 다른 말로는 ‘진언’이라고도 한다. 진언이란 허튼 말이 아닌 ‘진실한 말’ ‘참다운 말’이라는 뜻으로, 실담문자(범어의 자음과 모음)로 된 짧은 주문(비밀스러운 문구)이다. 염불도 그런 다라니의 일종이다. 고려시대 대장경을 새기는 일도 그것으로서 외적을 물리치려는 다라니를 행한 경우이다. 시는 그런 목적이 없이도 그 자체로 다른 공간을 만든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풀리지 않기 위한 의문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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