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히말라야 원정대의 시신수습 관련 뉴스를 많이 접했다. 고 김창호 대장이 이끈 한국 원정대는 히말라야 등반에서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기 위해 구르자히말 봉우리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관련 뉴스를 접하다가 ‘등정주의’와 ‘등로주의’라는 ‘등반’에서 쓰는 말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산악계의 오래된 논쟁이라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 짧은 이해일 수 있지만 등정주의는 ‘얼마나 빨리 올랐느냐?’,  ‘얼마나 많은 정상에 올랐느냐?’, ‘세계 최초냐?’ 등 정상정복의 결과에 의미를 두는 뜻인 반면, 등로주의는 ‘어떤 길로 올랐느냐?’, ‘어떤 방식으로 올랐느냐?‘ 등 과정을 중시하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다음은 등정주의에 치우쳐 있는 한국 산악계에 대한 비판글이다.
[등정주의는 한 마디로 결과중심주의다, 투입 대비 산출 효과를 따지는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효용성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방식이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 정복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등로주의는 일반적인 코스를 선택하지 않는다. 더 위험하고, 더 힘들고,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코스를 선택한다. 또한 세르파나 장비의 도움을 최소화한다. 결국 남는 것은 산악인 자신의 감각과 판단이다. 갈수록 발달하는 등반장비업체의 상업적 의도 역시 개입된다. 한국사회에서 등정주의가 여전히 환대를 받는 것은 경쟁과 효율이 지배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이제 ‘정상(자본욕망)’이 아니라 ‘루트(삶의 욕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권경우 문화평론가]
이제 나의 영역으로 돌아와, 건축(建築)은 과정을 내포하고 있는 행위 전반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건물(建物)이라고 생각한다. 산악계의 용어를 차용해보면 현재 내가 활동하고 있는 건축계는 너무나 ‘건정주의(建頂主義)’에 쏠려있는 것 같다. ‘얼마나 들었나요?’, ‘얼마나 걸렸나요?’, ‘디테일이 살아 있네요’, ‘디테일이 깔끔하게 나왔네요’, ‘완성도가 높네요’ 등 대부분 지어진 결과물에 초점이 맞춰지고 논의가 진행되는 것 같다. 건축은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항상 결과가 중요하게 인식될 수 밖에 없지만 그 결과물 앞에서면 모든 과정은 소멸되어 씁쓸한 감정이 생기고 만다.
스스로 자문해 본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고, 고통을 준 나만 만족하는 100%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축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조금 미흡한 구석이 있더라도 모두가 만족하는 90%의 건축이 좋은 것인가? 공사비가 더 늘어나더라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결과에 포커스를 맞춘 작업을 할 것인가? ‘건로주의(建路主義)’가 중요하게 인식되어 “몇 번의 수정과정과 험난함을 넘어서 완성되었습니까?”, “어떤 과정과 노력이 있으면 이정도의 건축물이 나오는지요?”, “몇 날 몇 일을 야근을 해야 이정도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지요?” 이런 이야기가 논의되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 또한 노력하고 싶다.
등로주의를 추구했던 고 김창호 대장과 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발언대를 빌어 소소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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