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등장이 야기한
혼돈 속에서 건축은 미래를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건축계가
이러한 역할을 주도하길 희망한다.


영화 ‘옥자’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출품과 초청을 금지당해 화제가 되었다. 영화관에서 상영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원칙에 맞지 않는 것이 이유지만, 실제로는 넷플렉스 등 인터넷 기반 영화 서비스를 두려워한 영화관 업계의 반발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아야한다는 상식이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 단성사를 추억하는 세대와 멀티플렉스가 익숙한 세대의 영화관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다르지만,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성사와 대한극장은 공연장, 영화관 그리고 멀티플렉스로 변모해 왔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사실과 장소의 필요성은 변하지 않겠지만 거세게 밀려오는 디지털의 힘은 지금과 같은 영화관이 건축물로서 생명력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기술의 혁신은 극장뿐만 아니라 여러 공간과 장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텔이 에어비엔비(airbnb)에게, 소매상점과 월마트까지 아마존(amazon)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3D 프린터와 디지털 인프라가 생산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우리의 살고, 일하고, 여가와 문화를 즐기는 노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달라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 스마트폰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이제 곧 시작될 5G 통신서비스는 더 많은 변화를 예상한다. 더욱 발전된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와 드론을 포함해 더 많은 첨단기술이 일상화 될 때 건축과 도시 역시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 베니스 영화제는 인터넷으로 보급된 영화에 상을 수여했다.
이 시대의 변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혁신적이고 급격하다. 하지만 일상을 담는 공간이 건물과 도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동안 건축계의 많은 노력으로 디자인과 시공, 작품적 완결성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거나 넘어서고 있다. 건축이 한 단계 높게 이 시대에 기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기술과 산업의 변화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산업혁명이후 근대를 주도했던 건축사들은 “건축사는 예언자와 같다”고 했다. 지금과 같이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등장이 야기한 혼돈 속에서 건축은 미래를 제시했다. 르코르뷔제의 ‘빛나는 도시(Radiant City)’,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평원 도시(Broadacre City)’는 자동차, 전기 등 당시 첨단 산업과 기술을 건축에 담아 미래 도시의 상(像)과 삶을 구체화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건축이 다시 진지하게 미래를 논의해야 할 때다. ‘옥자’는 영화관의 위협이 아니라 건축의 새로운 기회다.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영화관의 진화를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또한 집과 도시공간에서 영화관에서의 감동을 원하는 새로운 수요에 건축이 대응해야 한다. 과거의 건축이 그랬듯이 시대의 가치를 공간과 환경으로 만들어냈던 역할을 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오늘도 수많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건축의 변하지 않는 가치는 사람들의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공간과 장소가 항상 그리고 오랫동안 사람에게 삶의 행복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의 지속가능한 생명력은 바로 그 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건물이 계속 좋은 건물로 사랑받을 수 있을까하는 현재 시점에서의 이용과, 미래의 지속가능한 활용을 고려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급격하게 발전하는 첨단 기술과 산업의 변화와 이로 인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건축에 반영하는 문제에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근대건축사들이 시대를 주도했듯이 우리 건축계가 첨단 산업과 기술을 건축에 담아 미래 도시의 모델을 제시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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