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KTX를 타고 2시간 여를 넘게 달렸다. 남도의 서남쪽 끝자락에 도착 안내방송이 나온다. 완행열차로 다니거나 버스로 목포를 방문하던 시대에서 빠른 속도로 내달아 목포의 거리를 걷고픈 마음이 앞서서인지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목포역에 내리고 나면 늘 간직하고픈 장면이 있다. 목포역의 철로가 막혀서 더 이상 가지 못하는 끝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어느 도시, 어느 나라를 가던 기억하고픈 장소이다.
사진증명을 하고 대합실을 나서니 밝은 햇살에 흰 구름이 섞여 맑은 공기를 내뿜는다.
목포역 앞은 어느 역과 다른 모습이 있다. 가을 이맘때면 손수레에 무화과를 파는 분이 남도의 맛을 전한다. 빨간 입을 별모양처럼 내보여서 늘 이쁘다 말하곤 한다.
그 앞을 지나는 횡단보도에는 옥단이길 이정표가 있다. 어깨 지게에 메단 수통 두 개, 유달산 가는 길과 옥단이길, 근대문화유산 이정표이다. 이 이정표만 따라가면 된다.


○ 역사골목 여행 ‘옥단이길’
옥단이길은 목원동 역사골목 탐방로이다. 옥단이는 목포 원도심의 골목을 누비며 물장수로 살았던 실존 인물로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목원동은 목포역과 유달산 자락 사이에 형성된 근대도시 목포의 상징이자, 예향의 뿌리이다. 상가와 주거지를 연결하는 작은 골목길이 마치 심장의 혈관처럼 얽혀있고, 그 안에는 다양한 근대역사유적이 남아있다. 옥단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1897년 개항 이후 조선인들이 이룩한 근대도시 목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 동본원사(東本願寺)
오거리 문화센터의 건물은 1897년 목포가 개항된 이후 가장 먼저 목포에 진출한 일본 불교사원인 동본원사의 목포별원으로 건립된 곳이다. 정식 명칭은 ‘진종 재곡파 동본원사’이다. 개항장 쪽 일본 영사관 부지 근처에 포교소를 설치했다가 1904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 이곳은 당시 일본인들이 살았던 개항장 지역과는 약간 벗어나 있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이 만나는 접경지에 위치하여 사찰이 입지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광복 후 정광사의 관리를 받다가 1957년부터 중앙교회 건물로 사용됐다. 2007년 등록문화재 제340호로 등록됐고, 현재 예향 목포시민들을 위한 오거리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마당에는 이곳이 5.18 민주화 운동관 관련된 사적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주변의 식당과 소매점 등이 함께 어울려 있고, 주차 공간이 부족하여 차량이 보차혼용도로에 가득하여 동본원사와 조화롭기 보다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져 조금 아쉬웠다. 건물은 일본식 기와를 얹어 웅장한 느낌을 주며, 석재벽면과 조화를 이루는 색감이 하늘의 색과 어울려서 보기 좋았다. 건물 내의 노목 또한 운치를 더 한다


동본원사를 다시 돌아 나오면 유명한 빵집이 하나 보인다. 전국 5대 빵집이라고 소문난 빵집이다. 크림치즈 바게트와 새우바게트가 유명하다. 방부제를 사용 안해서 사자마자 먹어야 제 맛인 빵을 먹기 위해 잠시 줄을 서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변 상가 중에는 도시재생을 통하여 창업한 청춘 창업 가게도 보인다. 골목길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 목포문화원
오거리 문화센터를 나와 다른 골목길로 들어선다. 혈관처럼 연결된 골목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목포문화원은 일본자본에 대항한 호남지역 인사들에 의해 1920년 설립된 은행이다. 외벽의 붉은 재질은 타일로서 러시아에서 들여와 건축한 건물이다.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 외부 주변들이 정리가 안 되어 지저분한 부분도 있으나 일상과 함께 어울리는 건물의 모습이라 더욱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작은 계단석 하나마저도 그 당시의 모습이었으리라.


목포 문화원을 나와 옥단이길을 다시 걷는다. 목포항에서 불어오는 바다 내음과 일본식 가옥이 조금씩 나타나기도 하고, 가로의 단차를 이용해 시원한 물이 흐르는 벽천도 나타난다. 목포시내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묵전시행사와 관련된 홍보물 등도 볼거리에 한몫을 한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