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지느러미를 다오
- 최승호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려고 애쓴다
어부들이 긴 칼로
상어 지느러미를 도려낼 때
상어들이 폐기물처럼 바다에 던져질 때
 
나는 바는 것 없이 바라보려고 애쓴다
벌목으로 토막 난 통나무들처럼
상어들이 지느러미 없는 지느러미를 꿈틀거릴 때
아무것도 물어뜯지 못하고
바다를 물어뜯을 때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려고 애쓴다
바라는 것이 바로 고통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라본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무력하게
무력하기 짝이 없게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지느러미 없는 상어들을
지느러미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방부제가 썩는 나라』최승호 시집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바라본다’는 말에는 아마도 ‘바라다’는 뜻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바라고 본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바라볼 때, 우리는 그것을 멍하게 있다고 한다. 멍한 상태. 바라는 것이 없는 바다에서 바라는 것이 있는, 살고자 하는 생명들이 무수히 살아간다.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는 텅 빈 순간,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바다는 바다다. 우리는 그 순간 바다처럼 된다. 바다와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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