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설계겸업, 건축안전 ‘견제·균형’원칙 무너뜨려

국민 안전 위협하는 ‘건설사의 건축설계업 요구’ 김혜민 기자l승인2018.09.1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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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협회, “건축사 보유한 건설업체의 설계업 허용해 달라” 국토부에 건의
   건축사협회 “국가전문자격제도를 건설업체 이익에 따라 운영되어선 안 돼”

최근 건설업계가 건축 설계업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견을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성장 발전 등을 앞세우며 건설사의 설계업 허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건축의 공공성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들고 건설 업역만을 넓히려는 위험한 주장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건축설계업 진입 제한 규제 개선’이란 제목으로 ▲ 건설업체가 건축사를 보유한 경우 신고절차를 거쳐 건축 설계업 허용 ▲ 법인 대표자의 건축사 의무 규정을 폐지해줄 것을 국토부에 건의했다.

건설업계의 건축설계업 허용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그 결과 건축사 자격이 없어도 건축사 20인 이상을 고용할 경우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건축사법 시행규칙이 2010년 8월 개정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건설업계는 건축사를 고용해 신고하면 건설사도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고 있다.

◆ 의사·변리사·건축사의 전문성 독립엔 이유 있어
 
하지만, 건축사업계는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설계, 시공, 감리가 서로 협력과 견제 관계에서 지어져야만 건축물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건설사가 설계자격이 없음에도 설계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주장은 국민의 안전원칙을 해치고 무자격자가 업역 만을 넓히려는 ‘술수’라는 비판도 나왔다.

대한건축사협회도 국민의 생명·안전에 직결되는 공익을 위해 건축사 자격은 '자격기본법'에 따라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축사협회 관계자는 “국가전문자격제도는 건설업체의 이익에 따라 편의대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건축물의 공공성과 안전은 전문분야별로 건전한 상호견제와 협력관계를 통해 확보되는데, 건축사가 건설업체에 소속되면 건축사의 독립적인 Check & Balance 기능이 없어져 건축물의 공공성과 안전성 확보가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건설업은 등록기준(자본금, 직원, 시설 등)을 갖추면 되는 무자격업으로, 건축사·변호사·약사·공인회계사·변리사 등 타 전문자격자와 구분되며, 타 전문자격사도 무자격자의 자격사 법인 설립에 대한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설계와 시공분리에 따라 설계변경이 일어난다는 건설업계 주장에 대해서는 “설계과정에서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지 않는 관행 문제”라고 응수했다. 

◆ 시공사 편한 값싼 설계만 양산해 안전이나 품질이 뒷전으로 밀릴 우려
   현행법 이미 ‘20인 이상 건축사 고용한 건설사에 설계업 허용’
  “혁신성장 핑계대며 설계업 허용해달라 반복하는데, 건설업 혁신 있었나?” 지적

A 건축사도 “변호사와 검사, 판사의 업무영역을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건설업계는 공종간 간섭문제가 애로사항이라고 주장하는데,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어야 견제, 긴장관계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B 건축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건설업계는 혁신성장과 경쟁력을 핑계로 설계업 허용을 내세우는데, 정부가 20인 이상 건축사를 고용한 건설사에는 설계업을 허용했음에도 이뤄낸 혁신성장이 있기는 한가? 건설업계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설계 분야를 넘보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는 준비가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C 건축사는 “정부는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규제개혁 핵심과제에서 ‘건설업체 설계업 진입규제’를 개선완료로 종결 처리했고, 2012년 규제의 재검토 조항도 삭제해 현행 유지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건설업계가 끊임없이 요구해온다고 해서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 없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건설사의 설계업 허용을 고려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D 건축사도 “시공사에게 설계를 허용하면 시공하기 좋은 형태의 설계만 양산될 것이며, 값싼 건축물만 만들어내 우리나라 설계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건축 설계를 공사수주나 입찰 때 가격경쟁 수단으로 이용해 건축물의 품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건축물의 공공성 및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전문직 활성화 방안 연구(2017)’에 따르면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이 건축물에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전문가인 건축사가 설계와 공사감리를 수행하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건축사에게 고도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고, 건축사의 업무내용과 전문성, 건축의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매우 큰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건축사 자격제도에 개인의 영리추구보다는 공공성이 부여돼 있다”고 건축사의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건축사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국가의 국민에 대한 주거생활 보장 의무를 실현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국가는 건축물의 안전성, 공공성, 공간과 경관의 보호를 위해 입법적 개입을 한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연구결과에서 “건축사에 대한 위험분배 차원에서 건축물의 안전성과 공공성 및 경관 권리의 보장과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비자격자인 사람이나 법인에 의해 발생 가능한 위험과 비효율이 차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축사에 의한 설계와 감리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건설업자가 설계와 감리업무를 수행할 때의 문제점으로 ▲ 위험분배 원칙에 위배되어 위험통제에 따라 이익 향유에 상응하는 위험분배로 인한 책임이 없고 ▲ 건축물의 안전성, 공공성 및 경관과 도시 이미지 제고 등에 한계가 있으며 ▲ 설계·감리 독립성과 중립성, 객관성 담보에 실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혜민 기자  8691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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