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는 건축문화의 예술적 가치 생산자

▲ 임종엽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탈리아 건축에서 가치의 정의

유럽의 건축 문화에서도 이탈리아는 모든 것에서 가장 긴 시간의 흔적을 유지하며 기억의 축적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탈리아는 도시의 원형성(originality)을 그리스로부터 배운 최고의 탁월한 가치(arete)이자 그들의 오랜 문화에서 가장 중심적인 미덕(virtus)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이미 형성된 도시의 틀은 전쟁과 대형의 재난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쉽게 지우거나 파괴함 없이 그대로 사용하거나 극히 부분적으로 수정함이 마땅한 것이다. ‘현실의 거울’이라는 건축은 그렇게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것이어서 자랑이 될 수도 있지만, 지울 수 없는 반성의 결과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의 형상(Urban morphology)과 건축의 유형(architecture typology)은 그대로 상태를 유지되어야 함을 원칙으로 한다.

역사와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단순 보존(保存, conservation)과 앞으로도 영유하는 보전(保全, preservation)의 의미에서 동시에 사용하고 있으나, 특히 도시에서는 언제나 재사용, 다시 말해 지금 사용하고 있어야만 건축물이고 도시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유폐 혹은 격리된 상황에 놓인 것은 건축이나 도시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기초적인 개념이다. 이 의미는 새로 들어서야 하는 건축물 혹은 도시의 변모가 가야할 방향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시 재생(再生)은 다시 살리는 것을 말한다. 모든 새로운 건축물의 설계방향은 도시 본래의 형상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도시의 성격, 규정 그리고 가치

도시 속성의 성격을 규명하는 여러 기준 중 인구의 밀도는 매우 의미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밀라노는 상업적, 공업적으로도 매우 활발한 북부 최대의 도시이다. 그곳의 인구는 130만 명, 광역 도시권으로도 300만 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대 도시인 로마 역시 행정구역 면적은 1,285㎢로 서울시(605㎡)의 2배 정도지만, 인구는 290여 만 명, 로마의 광역권역의 인구도 400여 만 명 정도이다. 문화, 역사, 경제적으로 중요도시인 피렌체는 38만 명에 광역으로도 150만 명이며 베네치아는 지금도 육지를 제외한 구시가 겨우 6만 명에 석호를 포함해도 10만 명 정도이니 그들이 도시의 형상과 속성을 유지하는 방식이 매우 놀랍기만 하다.

삶의 모든 것에서 유지하며 전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들에게 도시의 재생은 낯설게 들릴 수 도 있다. 건축사 알도 로시의 건축과 도시이론의 원칙은 지극히 명료하면서도 확고부동하다. 5가지 정도로 요약하면 역사성, 지역성, 단순성 그리고 엄숙함과 연속성이다. 이는 동시에 상기한 아레테(탁월함의 가치)와 비루투스(진리로 향한 미덕)로 도달하는 최소한의 규율과도 같은 것이다.

건축사의 탁월함이 만든 도시의 미덕

아이폰 같은 디바이스만 바뀌어도 삶의 행태가 달라지는 것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발생한다. 도시는 삶의 변화를 수용하는 그릇이고 건축은 그에 대한 철저한 반영이자 가장 크고 중요한 도구가 되어야 함으로 도시 건축은 큰 틀을 유지함과 동시에 여러 다양한 부분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적용시킨다. 물론 삶의 가치가 더 깊어지는 방향에서만 결정한다. 

▲ Teatro Paganini parma의 도시재생 전(위, 설탕공장 Zuccherficio Eridania Parma)과 후 모습(사진 : www.fondazionetoscanini.it)

방치된 설탕공장을 극장으로

파르마(Parma)라는 도시에서 폐기된 공간을 공연장으로 고쳐 사용한 사례가 있다. 이 도시는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주도로 인구는 20만 정도이나 기원전부터 시작된 도시로 많은 음악가(토스카니니와 베르디 등)와 햄과 치즈 그리고 파스타 면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도시에는 1899년부터 문을 열고 운영되던 공장 주케리피치오 에리다니아(Zuccherficio Eridania Parma)가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가장 큰 설탕공장이기도 했으나 도시의 확장, 경영 등의 변화로 이 공장은 1968년에 문을 닫게 되었고 그로부터 2000년까지 약 30년 동안 주변의 여유 공간이 공원으로 변화된 곳에 방치된 시설로 남겨져 있었다. 이 버려진 시설이 노장이기는 하나 여전히 실험성과 완성도를 중시하는 건축사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 도시의 시민들은 파가니니의 슬픈 일생을 거두는 의미(떠돌던 무덤이 최종적으로 파르마에 안치됐다)로 이 공연장의 이름은 ‘파가니니 극장’이라 불릴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이 극장은 기존의 공장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최소한의 변형만을 통해 공장이 극장으로 탈바꿈하면서도 건축 본래의 유형과 성격이 그대로 유지하는 기법은 너무도 정론적이다. 약 210억 원(1,400만 유로)을 들여 규모 780석의 아름다운 극장의 탄생에는 서로 다른 기능을 녹여내는 기술적인 비법이 포함되어 있었다. 박스 공간의 크기와 유형이 비슷할 수는 있으나 단순 공장이 음향학적 섬세함을 요구하는 극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렌조 피아노만의 숨겨진 기술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의 위치와 그 장소의 장점을 동시에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전면 유리창을 사용한 것은 음향학적으로 위배되는 기술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건축사의 역량은 바로 이런 난제에서 시작됐다. 유리라는 재료의 속성을 단편적인 선입견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꾸었고 버려져 가장 고리타분한 공간을 가장 첨단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탈리아에서 건축사

파르마 시는 건축사의 능력으로 그들의 유산을 지켜낸 곳이다. 그 나라의 건축사가 지금도 여전히 존경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시적인 상업적 경제적 가치판단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삶의 영속적인 가치를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의 경험과 증거 속에서 도시의 장기적인 가치를 파악해준 건축사였고, 단순하지만 편안해서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건축물로 우리의 기억과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건축사이며, 대중들이 보기 어려운 그들의 긴 인문학적 시야를 지닌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건축은 도시재생을 언급하지 않아도 늘 재생되어야 한다.

도시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건축적인 순수유형을 손상됨이 없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숨은 기술력 그리고 변화의 다양함과 새로움을 아름다움으로 수용하여 평가할 수 있는 인문학적 비평의 지혜야 말로 건축사의 최고 덕목이고 의무였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수저 디자인에서 도시 디자인을 언급하는 나라다. 서두르지 않으나 실수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기본자세를 통해 엔지니어로서의 건축사가 지닌 장인성은 곧 예술적 문화가 지닌 가치의 생산자라는 통섭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있음을 지금 다시 숙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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