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 김선재

가도 가도 여름이었죠. 흩어지려 할 때마다 구름은 몸을 바꾸고 풀들은 바라는 쪽으로 자라요. 누군가 길을 묻는다면 한꺼번에 쏟아질 수도 있겠죠. 쉼표를 흘려도 순서는 바뀌지 않으니까. 곁에는 꿈이니까 괜찮은 사람들. 괄호 속에서 깨어나는 사람들. 지킬 것이 없는 개들은 제 테두리를 핥고 햇빛은 바닥을 핥아요. 나는 뜬눈으로 가라앉고요. 돌 속에는 수많은 입들이 있고, 눈을 가린 당신이 있어요. 빗소리는 단번에 떨어져 수만 번 솟구치구요, 앞도 뒤도 없이 일제히 튀어 오르는 능선들. 갈 데까지 가고서야 공이 되는 법을 알았죠. 잎사귀처럼 바닥을 굴러 몸을 만들면, 바람을 숨긴 새처럼 마디를 꺾으면, 안은 분명할까요. 뼛속을 다 비우면, 바깥은 안이 될까요. 아직 가도 가도 어둠이에요. 하루가 가도 하루가 남는, 손을 뒤집어도 손이 되는. 그러니 당신, 쓴 것을 뒤집어요. 다시 습지가 될 차례에요.


- 『목성에서의 하루』 김선재 시집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올 여름은 더웠다. 그렇게 더운 날에는 당연한 실험을 하는 걸까? 이 무더위가 가실 것 같지 않고, 순간은 영원히 계속 될 것 같고, 밤이 와도 소용없고, 무엇을 해도 그게 그거인 여름날이었다. 그런 날 손을 뒤집어도 손이 되는 당연한 실험을 하면서 시인은 그 당연함을 아주 낯선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축구공을 터뜨리지 않고 뒤집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시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시는 당연하게 그것을 해 치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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