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 최하연

  문경이나 곡성 어느 길에서
  낡은 경운기 지나가면
  그 뒤로는 모두 어둠이어서
  까마귀 떼가
  국지성 함박눈을 뚫고
  209동 옥상에서
  주진리 산13번지로
  날아간다
 

- 『디스코팡팡 위의 해시계』최하연 시집 / 문학실험실 / 2018년
우리가 지나온 길은 우리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남아있겠지만, 만약 그 기억이 없이 우리의 지나온 길이 있다면, 기억 없이 과거가 있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 없다면, 그 시간은 아마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새겨질 것이다. 회상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으로 마치 어둠이 지난 길들을 지우듯이, 그 시간은 우리 곁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모든 지나간 시간들이 지금과 앞으로 올 모든 시간들과 함께 같이 있다면, 세계는 펑 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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