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서로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소중하게 여기기를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팔순의 할머니와 서너 살은 되었음직한 손녀 일행을 만났다. 그런데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인사 해야지?”하니까 손녀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한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 할아버지 아냐. 아저씨라고 해”했더니 뒤에 서 있던 아내가 애가 놀란 것 같으니 빨리 인사를 받아주라고 채근한다. 할 수 없이 놀라서 눈이 동그라진 아이에게 “아, 착한 아이구나. 참 예쁘게도 생겼네” 했더니 금세 얼굴이 밝아진다. 나 어릴 때 ‘아저씨’라고 불린 사람들은 나이도 듬직했고 뭔가 힘과 연륜이 묻어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저씨라고 제대로 불려 지기도 전에 어느새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다.
아내는 서울의 친구모임에 갔다 오면 친구들로부터 생활정보를 챙겨오는데 지난 6월에는 TV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활정보에 딸려왔다. TV 드라마는 잘 안 보는데다가 그저 그런 멜로물 같아서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불볕더위로 쉽게 잠을 못 이뤄 이럴 바에는 ‘나의 아저씨’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TV 앞에 앉았다. 시작부터 화면 속의 내용은 어두웠고 폭력까지 난무하여 더 봐야 하나 망설여졌다. 그러나 드라마는 회가 거듭할수록 감동을 주었다.
대학 후배가 대표이사로 있는 건설회사에서 만년 부장으로 답답하게 살아가는 45세의 박동훈. 어려서 부모를 괴롭히는 사채업자를 죽인 전과가 있으면서 아픈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며 낮에는 회사 비정규직, 밤에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냉소적인 21살의 지안(至安). 이 두 사람은 수시로 부딪히는 가운데 서로를 알아가며 보듬어 주고 용기를 주어 마침내 온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주연, 조연은 분명히 있으나 모두가 주연인 것 같은 드라마. 마치 우리네 일상을 몰래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배역들의 연기가 자연스럽다. 어린 아이유의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 팍팍한 세상을 온 몸으로 버티는 지안은 박동훈 같은 진짜 어른을 만나 세상과 악수를 하게 되고 동훈 역시 변해 간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삶이 씨줄 날줄로 엮여 마치 우리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어떻게 해야 ‘어른’인지를 보여주었던 드라마였다.
6~7년 전의 일이다. 내가 가르쳤던 제자가 어느 날, 석사과정 졸업논문을 쓰는 중 지도교수와 갈등이 생겨 힘들다고 상의를 해왔다. 나는 결론적으로 “네 몸과 마음이 더 망가지기 전에 논문을 포기하고 일단 수료 후에 논문을 쓸 것인지를 생각하라”고 했다. 그 말이 힘이 되었는지 며칠 후 논문을 쓰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후 그 제자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직원이 되었는데 몇 년 전 본인이 직접 만든 카드에 손 글씨를 써서 보내왔다. ‘캄캄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시간, 선생님 말씀은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는 그는 그렇게 환한 모습을 내게 보여 주었다.
어쩌면 누구에게 던지는 위로의 말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료할 수 있다. 극중에서 동훈이 지안에게 ‘착하다’는 말 한 마디가 지안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밥 잘 챙겨먹니? 하는 안부의 말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상처 받은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서로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소중하게 여기기를... 내 삶의 응원자는 누구이며 나는 또 누구를 응원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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