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강산이 한번하고도 반절이나 변할 만큼의 시간이니, 프로로 이정도의 경력을 쌓았다면 소위 ‘전문가’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꽤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만큼, 자신감도 있었고 나는 아직 젊으니 ‘이제는 날개를 펴보자’하는 모험 심리도 있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던 무모함은 충분한 준비 없는 ‘독립’이란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멀지 않아 내 부끄러운 무능을 마주하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분의 의뢰가 들어왔다. 작은 주택의 대수선 건이었다. 사업지가 OO시에 있어 아침부터 부랴부랴 OO시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주택. 지적에서 보면 주택이 이 자리에 있으면 안된다. 그 사업지로 통하는 도로가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유지들 사이에 새색시마냥 담장으로 수줍게 얼굴을 가린 주택의 대문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이런 유형(?)의 프로젝트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야말로 사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살아 있는 건축이란 사실도 덤으로...
OO시 주택가에는 이렇게 도로에 접하지 않은 필지가 많았고, 때문에 사유지가 임시도로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지목상 도로에 접하지 않은 필지에 건축행위를 할 경우 진입로상에 있는 모든 토지주들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OO시청 협의 과정 중에 알게 되었다. 애당초 인허가가 어려운 땅이었다. 그 많은 토지주들을 다 찾는다하여도 순순히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줄리도 만무했고, 인근 부동산업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커미션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공간만 고민하면 그게 사람을 위한 건축인줄 알았다. 더 나아가 건축비를 고려한 공간이라면 더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한 개념 있는 건축이라 굳게 믿었다. 그 건축이 도시 안에 있고, 건축은 사회 법규와 질서 위에 구축된다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기본적인 진리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는커녕 학부생보다 못한 내 무지와 오만에 얼굴이 붉어졌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해 인허가 행정절차가 필요 없는 선에서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많이 노후된 목조 지붕을 그대로 들어 고정한 후 내부 수리 공사를 먼저 진행하고, 지붕에 추가 보수 작업을 하여 마무리하였다. 대수선 범위에 들지 않는 선에서 기둥하나 들보하나 모두 체크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클라이언트로부터 작은 용역비에 수고 많았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받았다. 클라이언트의 인사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느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 위한 건축을 위해서 건축사는 얼마나 더 무명이어야 할까? 아니 무명이어도 될까? 15년 경력 중 가장 작고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작은 프로젝트라하여 고민이 덜하지 않다. 사람하나 위한 집 한 채가 이토록 어렵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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