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4년 2월 구 주택공사에 입사한 이래 35년째 건설공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집을 짓고 도시를 조성하는 기업에서 30년 넘게 지내온 것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건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인의 사무실이나 집을 방문할 때면 나도 모르게 설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
전에도 건축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 왔지만 필자가 건축에 대해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였다. 사택이 있던 노형뜨란채아파트가 살기 좋은 아파트 대상을 받은 단지로 아파트단지 설계도 이렇게 멋지고 실용적으로 잘 할 수 있구나를 재인식하게 해 주었고, 단지 근처에 있던 파출소(지구대)도 큰 감동을 준 건물이었는데 파출소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노출콘크리트 형식인데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설치한 목재루버가 잘 어울리던 멋진 건물이었다. 인근에 있던 어린이집도 어린이집이라는 특성을 멀리서도 느낄 수 있도록 예쁘게 설계된 건물이었는데, 이들을 통해서 건축이 꼭 대규모의 건물에서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 제주생활을 통해서 건축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는데 이타미 준이 설계한 포도호텔과 비오토피아, 방주교회에서, 그리고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글라스 하우스와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에서 받은 건축이 주는 아름다움의 깊이는 자못 큰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큰 감동을 주었던 것은 멕시코의 건축사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가 설계한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였다. 제주 컨벤션센터 인근에 지어질 예정이던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겸 갤러리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던 건축사답게 주황색과 청보라색이 조화된 건물은 건축의 아름다움과 건축사의 상상력의 멋짐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 주었기에 서귀포에 가는 기회가 있으면 자주 들르곤 하던 곳이었다. 그랬기에 그 후 이 멋진 건축물이 철거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 건축에 대해 참으로 무지하고 몰이해한 사업자와 공무원들에게 큰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처럼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다보니 우리의 현실에 대해 여러 가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가장 큰 아쉬움은 사회 전반적으로 건축에 대한 인식이 무척 낮다는 것이다. 건축이라는 고도의 창조적 행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건축으로 표상되는 그 나라의 문화수준에 이해가 낮은 것이다. 건축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에 건축사를 존중할 줄 모르고,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는데도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크고 외형이 화려한 것만 찾고, 유행을 쫓느라 독창성은 도외시 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이 건축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고위층들에게 더 심하다는 것이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도 결국은 건축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풀어가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스타 건축사들을 많이 배출함으로써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는 일부터 언론보도와 기고들을 통해서 사회 전반의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까지 다양한 노력들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우리대학에서 유현준 교수 초청강의가 있었는데 강의를 들은 많은 직원들이 건축과 도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건설경제신문에서 매주 주목할 만한 건축물들을 다루고 있는데, 보다 대중적인 일간지와 TV방송들을 통해서 건축에 대해 다루는 것도 의미가 크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대한건축사협회장께서 동아일보 편집진을 만나 건축에 대한 보도를 활성화 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늙어가는 도시를 재생하고 도시민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데 건축이 기여할 부분은 참으로 많다. 건축계에 종사하는 분들의 분발과 노력을 통해서 더 많은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들이 창조되고, 이를 통해 건축이 제대로 평가 받고 인정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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