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동명 건축사

공공기관 발주과정에서의 정도를 벗어난 부당함이 여전합니다.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은 민간에서 부당함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땅치 않은 현실에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해외사례를 소개합니다. 미국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동명 건축사(미국 건축사)의 미국 정부 발주계약 과정과 특징을 주제로 한 기고를 게재합니다.<편집자주>

▲ Daniel D. Kim(미국 건축사)NCARB, LEED AP, Principal Architect, Partner/DGB+Line Architects

본인은 미국유학 후 현지에서 실무를 시작한지 20년, LA를 기반으로 건축사사무소 운영을 시작한지는 10년 정도 됐다. 실무를 시작했던 사무소는 주로 정부 발주 계약(government contract * 주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 포함)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사무소였다. 기회가 되어 일하던 사무실을 인수할 수 있었고 정부 발주 계약 업무(government contract)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소규모 회사로 영업(marketing)부서가 따로 있지 않으며, 대부분 정부 발주 계약(government contract) 수주를 위한 작업을 직접 진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업무를 통해 미국 정부 발주 계약 (government contract)의 과정과 특징을 간략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설계용역 계약의 종류

미국에서는 건축설계용역을 흔히 Architectural & Engineering Service (A&E Service)로 부른다. A&E service를 수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프로젝트별 계약(project specific procurement)  방식이며, 두 번째는 자격 및 협상에 의한 계약 (master contract procurement)방식이다.
프로젝트별 계약(Project Specific Procurement)은 말 그대로 특정 프로젝트에 필요한 설계용역을 그때그때 발주하여 업체를 선정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젝트 규모가 크거나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우에 흔히 사용된다. 
두 번째 자격 및 협상에 의한 계약(Master Agreement Procurement * 특정 프로젝트가 아닌 업무 수주가 가능한 후보로 계약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지정 또는 규칙에 의한 순서대로 업무 진행) 방식은 프로젝트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격심사를 통하여 복수의 A&E회사를 선정하고 이 회사들과 일반적인 설계조건들(예를 들어 납품도면에 요구되는 수준, 책임보험 요구조건, 시간당 용역단가 등)에 대하여 계약한 후 프로젝트가 있을 때 마다 미리 선정된 A&E회사들이 적정한 규칙에 따라 수주를 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소규모 프로젝트는 이 방식에 따라 진행되며 흔히 ‘필요에 의한 건축 설계 서비스(As Needed / On-Call A&E Service)’로 불린다.

일정 금액 이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이 일반적

이 방식이 좋은 점은 공개발주로 발생할 수 있는 시간과 경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지방정부들이 자체적으로 건축사나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직접 도면을 총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전문가인 건축사가 지방정부소속으로 계약하고 소속되어 건축 행정 업무를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관에 소속된 건축사가 직접 업무를 하기 보다는 외부의 건축사에게 용역을 발주한다. 이렇기 때문에 아무리 간단하고 작은 프로젝트라도 외부 A&E회사로부터 용역을 진행해야 하는데, 만일 모든 소소한 프로젝트까지 공개발주를 한다면 엄청난 시간과 경비가 낭비될 것이다.

건축설계는 입찰대상이 아닌 서비스 업무

설계용역을 발주할 때,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흔히 알고 있는 입찰(Bid)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못쓰는 것은 아니고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다. 입찰은 주로 공사나 물품구매에 사용되며, 가격이 가장 중요한 선정요건이 된다. 즉 입찰이라는 용어는 설계가 아닌 생산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의 개념이며, 미국에서 건축 설계는 지식산업 서비스로 보고 있다.
즉, 설계용역은 제품(product)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서비스(service)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A&E회사를 선정함에 있어 설계비는 참고사항 정도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설계팀 선정

보통 설계용역의 발주는 각 지방정부의 웹사이트(website)를 통하여 공고하며 보통 RFSQ (Request for a Statement of Qualification)로 불린다. RFSQ에는 용역의 수주를 원하는 A&E회사가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 내용들(Firm Profile, Sample Projects, Approach to the Project, Resume 등)이 명시되어 있으며, 참가할 A&E회사는 RFSQ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자격 증명 서류(Statement of Qualification)를 제출한다.
제출된 자격 증명 서류는 내부 심사를 통하여 평가되며, 경우에 따라 면접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아마 이 과정이 한국과 많이 다를 것이다. 선정과정은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고 여러 장치들을 두고 있으며, 공정성에 문제점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다. 한국 경우처럼 여러 가지 인연의 관계가 고려된 느낌은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한 객관성 검증을 위한 장치가 있는데, 심사점수나 최종적으로 선정된 자격 증명 서류(Statement Qualification)는 일종의 공적 기록물로 공개 요청하면 열람할 수 있다. 만일 심사에 불만이 있으면 복명(debriefing)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의 제기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실제로 필자의 회사도 이런 이의제기를 통하여 추가로 선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도 김영란법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각 지방정부마다 다른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일례로 LA County의 경우, 공무원이 $20.00이상 식사를 제공받으면 반드시 보고해야 하고, SQ심사 중에 심사위원이나 관련된 공무원에게 지정된 경로 외에 접촉을 시도하면 즉시로 자격을 잃어버리고 향후 5년간 해당 지자체에 수주시도를 할 수 없게 된다. 심사 기간 내 공식적 접촉 외에는 부정한 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협상에 의한 계약(As Needed Master Agreement)은 3년∼5년 정도 계약(contract)이 유지되며, 매 3∼5년마다 새로운 RFSQ가 공고된다. 기존에 계약이 있던 업체도 새롭게 자격 증명(Statement Qualification)을 제출하며, 계속해서 계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업체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해야 한다.

▲ 정부 발주계약으로 진행한 E.K ART GALLERY_1125 CRENSHAW BLVD, LOS ANGELES, CALIFORNIA(자료_DGB+Line Architects)

설계용역비의 산정

설계용역비를 산정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건설공사에 의한 설계비 산출 (Construction Cost Base)’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Effort Base’ 방식이다. ‘건설공사에 의한 설계비 산출(Construction Cost Base)’방식은 말 그대로 공사비 대비 일정 요율을 근거로 적정 설계비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프로젝트별 특이 상황들을 반영하기 어려워서 참고로만 사용하지 이 방식으로 실제 설계비를 산정하지는 않는다.
특히 공사 규모가 작은 경우, 요구되는 용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때로는 공사비에 맞먹는 설계용역비가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용역비는 ‘Effort Base’로 산정된다. 설계 용역 제안서(fee proposal)에는 프로젝트의 각 공정마다 제공되는 용역의 내용과 예상되는 소요시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전체 설계비는 구체적인 서비스 내용을 근거로 산정된다. 대부분 정부 프로젝트(government project)의 경우, 건축주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프로젝트 운영 부서(project management division)가 따로 존재하며, 이 곳 소속의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들이 각 프로젝트에 배정되어 A&E team과 상대한다.
이들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들은 대부분 건축사(architect)나 기술사(engineer)들로 구성되어 있고, A&E service에 대해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용역비를 협상할 때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건축사의 시간당 용역비는 지방정부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경험한 계약들의 경우,  $200.00~$220.00/hr 정도이며, CAD Drafter의 경우는 $85.00~$100.00/hr정도이다. 정부 계약 (Government contract)은 같은 서비스 용역(scope of service)의 경우 민간 프로젝트(private contract)에 비해 1.5∼2배정도 많은 용역비가 지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하나의 협상에 의한 계약(Master Agreement Term)에 수주할 수 있는 최대 용역비를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1년에 $1million, 전체 계약 업무 기간 (contract term)동안 $3∼5million정도이다.
설계용역비를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큰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의사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관료조직을 상대해야하는 부담감 때문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건축사사무소도 많이 있다. 미국의 경우 LA시 통합 교육구(LAUSD * 한국의 교육청에 해당) 프로젝트들의 경우 지나치게 관료적인 프로젝트 관리방식으로 악명이 높다.

건축사에 대한 인식
대부분 업무는 건축사와 계약 진행

대부분 정부 프로젝트(Government project)의 설계는 건축사(architect)를 통하여 제공된다. 어떤 프로젝트는, 예를 들어 공조설비 교체처럼 거의 100% 기술사가 수행해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기술사와 직접 계약하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이지 않다. 이는 건축사를 건축물 설계와 관련한 거의 모든 사항에 대해 조율(coordinate)하고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주체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 등 공공 기관의 경우 아무래도 관료적인 절차를 중시하기 때문에 형식적이기는 해도 건축사의 지위를 존중해주는 편이다. 건축사에게 다양한 의견을 제시 하긴 해도 직접 디자인(design)에 관여하거나 참견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고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한 사회가 건축물을 설계하고, 공사하고 운영하는 일체의 과정은 그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전제하며 어떤 제도가 다른 제도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 실무를 경험하면서 이곳에서도 여러 이해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상황들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한국의 어떤 부분들이 부럽기도 하다.
위의 내용들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고 그저 큰 전체의 한 조각일 뿐, 미국과 다른 건축실무자들에게 참고로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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