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연어 떼가 밀려갔다
- 박성현

육교 손잡이를 잡고 한 여자, 가파르게 기울고 있다

물길을 거스르며 연어 떼, 지느러미를 흔든다 얼굴은 사납고 입술은 길게 찢어져 있다

한 여자, 핸드백을 놓친다 바닥에 기포가 가득하다 지금 몇 시니? 덜컥, 문이 닫히자 한 여자, 심장이 흘러내린다

이미 곪았거나 썩어버렸다 지금 몇 시니? 입속에서 날카로운 더듬이가 꿈틀거리고 한 여자, 바닥에 주저앉는다 등뼈를 밟으며

연어 떼는 육교를 거슬러 올라간다 지느러미는 예민해서 불안하다 지금 몇 시니? 습관의 촉수에 예외란 없다 구청은 오늘

육교를 폐쇄한다 플래카드가 약속한 뚜렷한 구름 밑에서 한 여자, 마침내 오후가 된다 도대체 지금 몇 시니?

길을 바꾸는 것은 몹쓸 짓 멈춰버린 한 여자, 왼쪽 정강이를 찢고 수만 개의 붉은 알을 쏟아낸다

-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박성현 시집 / 문예중앙시선 / 2018년
한 여자가 육교를 오르고 있다. 그녀의 종아리가 시인의 눈에는 알을 가득 품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같았나 보다. 연어와 한 여자가 교차하며 그 사이를 ‘지금 몇 시니?’라는 물음이 연결하고 있다. 이 시에는 그래서, ‘한 여자’, ‘연어 떼’, ‘지금 몇 시니?’가 계속 환청처럼 들린다. 시를 다 읽고 나서도 계속 들린다. 육교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이미 사라져버렸다.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 그 환청 속에서 우리는 어딘가로, 어딘지도 모르면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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