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힌 사람이 치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기를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우리나라를 스칠 듯이 비켜가고 제8호 태풍 마리아가 중국에 상륙하면서 걱정 하나를 더는가싶었는데 전국은 온통 폭염과 열대야현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의 연속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여 산속 계곡이나 공원을 찾게 되는데 한강공원 등 둔치에는 텐트를 치고 더위를 피하기도 하지만 밤새 고성방가와 음주로 술병과 음식물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을 보면 쓰레기 분리수거는커녕 마구 버린 쓰레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를 수시로 목격하게 된다. 유원지 곳곳에 쓰레기요 청정한 계곡 옆 사람의 시선이 뜸한 외진 곳에는 어김없이 버려진 쓰레기가 널려있다. 여행길 어느 한적한 산길에서 차를 잠시 멈추고 아름다운 풍광에 잠시 취해보지만 계곡 저 아래 누군가 버리고 간 의자, 서랍장 등 가재도구가 눈을 어지럽혀 여행의 즐거움이 한순간 사라지곤 했다.
어른들이 이렇다보니 어린 학생들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게 되었다. 한번은 시내 어느 중학교 옆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작은 도로 곳곳에 흰 전단지가 어지럽게 버려져 있었다. 교문 앞에 다다르니 학원에서 나온듯한 사람이 학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든 학생들은 걸어가며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에 휙 버렸다.
나의 어린 학창시절 운동장 조회가 끝나면 우리들은 넓은 운동장 한쪽 끝에 일렬로 촘촘히 서서 운동장 맞은편 끝까지 걸어가며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는 했다. 또 운이 없으면 화장실 청소를 우리 반이 맡게 되어 1년간 매일 청소를 하고 선생님께 검사를 맡고 집에 가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버린 쓰레기는 내가 치운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버린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전에 내가 아는 사람이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휙 버리면서 “이렇게 버리는 사람이 있어야 청소하는 사람도 먹고 산다”는 뻔뻔한 말에 놀란 적이 있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면 교도관의 일자리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몇 달 전 오랜만에 영화관엘 갔었다. 상영관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검표를 하고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는데 마침 앞서 가던 젊은 남녀가 팝콘과 콜라를 들고 부리나케 가다가 그만 콜라를 바닥에 떨어뜨려 바닥은 콜라로 흥건했다. 그들은 일순 당황한 눈치더니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그냥 위층으로 가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없어 위층으로 올라가 안내를 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상영관 안에 들어 와서도 모처럼의 영화관 나들이가 유쾌하지 않았고 팝콘을 먹고 있는 젊은 커플들 모두가 콜라를 쏟은 범인으로 보였다.
지난 6월 네덜란드 뤼테 총리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총리는 커피를 들고 헤이그에 있는 정부청사 보안대를 통과하다가 실수로 커피를 바닥에 쏟았다. 그러자 그는 옆에 있던 청소원에게 대걸레를 빌려 커피를 닦았다. 걸레질을 하는 뤼테 총리 곁으로 다가온 여러 명의 청소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 했고 이런 모습은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여러 나라에 유포되었다. 선거유세 때나 볼 수 있는 정치인의 청소 퍼포먼스와는 달리 자신이 쏟은 커피를 직접 청소하는 진솔한 모습에 사람들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더럽힌 사람이 치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 우리 사회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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