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이,
내게 머무는 타인의 시선이
온기가 있고 그윽하기를...


지난 토요일 친구에게 전해 줄 물건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다. 주말이라 약속장소 주변 왕복 2차선 도로는 마구 주차되어 있는 차들로 혼잡하여 양방통행이 어려웠다. 겨우 빈자리가 있어서 나도 잠깐 불법주차를 한 후 물건을 건네주고 마주 오는 차가 없는 틈을 타서 부랴부랴 출발했다.
이곳을 빨리 빠져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속도를 좀 내어 가는데 맞은편에서 차가 온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길옆으로 바짝 차를 정차시키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으나 그 차는 3m 앞에 서서는 움직이지를 않는다. 나는 우두커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가운데 얼마간 시간이 흘러 맞은 편 차가 움직인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창문을 내리고 그 차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차도 지나가면서 유리창을 내리고 한마디 하는데 “뭘 쳐다봐? 쌩 달려와서 갑자기 서고는!” 나는 순간 기가 막혔다. 그 사람은 70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로 다소 마른 편에 머리카락은 별로 없었는데 한 성질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옆에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당황하여 “이이가 왜 또 이래욧!”하며 남자를 말린다. 아마 그 운전자는 내가 속도를 내어 달려 온 것이 불쾌했나 보다. 나는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 나이에 이렇게 일상적으로 하는듯한 까칠한 말투에 잠시 멍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주말의 기분을 잡치기 싫어서 쓴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오래전 나의 70년대 고등학교 시절은 교복에 모자를 쓰고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학교에서 힘 꽤나 쓰고 좀 건들거리는 학생들은 모자나 가방에 ♡에 큐피트의 화살이 꽂혀있는 그림을 그려 넣거나 ‘뭘 봐?’라는 문구를 써서 본인의 힘을 은근 과시하기도 했다. 그들은 담배도 피웠는데 가끔 호주머니와 가방 검사를 하여 담배 가루를 선생님께 들키는 날에는 교무실로 불려가 벌을 서기도 했다. 그렇게 교무실에 불려갔다가 나오는 친구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들에게 그들의 끈끈한 우정과 힘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가끔 뉴스에서 ‘왜 쳐다보느냐’며 시비가 붙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막말을 하여 세인의 시선을 집중시키려 하는 경우도 있다. 눈빛은 존경, 경멸, 사랑, 분노 등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시선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가끔 오해를 하여 충돌을 불러오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때로는 불편해 한다. 타인의 시선에 적당히 신경을 쓴다면 우리를 법을 지키게 하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인도할 수 있겠지만 지나치면 타인의 시선이 나를 통제하고 규정하게 되어 온전한 ‘나’를 잃게 된다.
가끔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한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중무장한(?) 사람은 본인의 모습은 감추고 상대방을 우월한 위치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과 마주치면 기분이 나쁘다. 사람의 직위나 옷이 권력이듯이 시선 또한 권력이다.
우리의 행동은 법률이나 도덕, 타인의 시선에 의해 제약 당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나를 숨기거나 자아(自我)를 존중할 때다. 그러므로 도둑은 남의 시선을 피하여 주로 밤에 활동하고 정의는 환한 낮에 발현되는지도 모른다.
시선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결정짓는다.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이, 내게 머무는 타인의 시선이 온기가 있고 그윽하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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