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이름 붙은 날이 많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5월 15일 스승의 날이 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성함과 몇 반인지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중 초등학교 시절을 기억해 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담임이 중간에 바뀌어서 두 분이셨다. 중간에 떠나신 선생님은 운동장 조회시간에 떠나는 인사를 하시며 우셨다. 4,5학년 때는 ‘ㅈ’선생님이 2년간 가르치셨다. 나는 그분께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글씨를 많이 배웠다. 당시에는 분필로 칠판에 적어 가면서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떤 날은 선생님이 ‘전과’를 주시면서 칠판에 적으라고 하셔서 작은 키에 의자를 놓고 전과에 있는 내용을 칠판에 옮겨 적었다. 내가 가끔 장난으로 요약해서 적으면 전과와 내용이 다르다고 전과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아우성이었다. 전과는 각 과목의 내용을 더 자세히 기술한 참고서였고 문제집으로는 ‘수련장’이 있었는데 생활 형편상 갖고 있는 학생들이 적었다. 칠판에 판서를 하느라 분필 글씨가 많이 늘었고 노트에 적는 글씨도 많이 좋아져서 지금의 내 글씨가 완성되었다.
6학년 ‘o'선생님은 무척이나 무서웠다. 5학년 때 이미 우리들은 1년 후를 생각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 때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때라 6학년이 되면 진학반 비진학반 두 반으로 나뉘어 진학반으로 가면 진학률 100%를 자랑하는 호랑이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6학년이 되어 우리들은 수시로 시험을 보았고 기준점수에서 모자라면 5점당 종아리 한 대였다. 기준점수가 얼마였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종아리에 피멍이 들게 맞고 다리를 그냥 내놓고 다니는 여름은 고역이었다. 나는 그래도 맞는 날이 적었지만 많은 친구들의 종아리는 성할 날이 없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친구들은 그 종아리를 보고는 내심 ‘깨소금 맛이다!’하며 쾌재를 불렀으리라. 그런데 나중에 “종아리에 피멍이 들더라도 진학반에 들어가 중학교에 가고 싶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일들은 오늘 날 교육 환경으로 볼 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60~70년대 시절 선생님은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존경과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스승의 날을 없애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다하니 씁쓸하다. 스승의 날은 9월 21일, 5월 26일 등을 스승의 날로 지정했다가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가 변경되었다. 그 후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방침에 따라 폐지되었다가 1982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교권은 교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하여 목소리 큰 학부모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김영란 법’의 제정으로 카네이션 한 송이도 선물해서는 안 된다는 법 규정 앞에 ‘스승의 날’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스승의 날 본래의 뜻이 빛을 바래어 촌지나 선물에 대한 부담도 줄일 겸 학교장 재량의 임시휴업일로 운영하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한다.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국민 청원은 교권 확립을 위한 교사의 진정한 염원이지 결코 ‘폐지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김영란 법은 그것대로 보호되어야 한다. 오늘도 묵묵히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정의를 가르치는 대다수의 선생님께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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