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에 도착하지 못했다
- 차주일


홀로면 보게 되는 땅바닥에, 홀로면 보이는 제 걸음 간격으로, 발자국 화석이 찍혀 있다 오늘 그의 사연이 내게로 배달되었다 주소지가 내려다보는 발치라는 것, 외로움이 몸을 옮겨 놓는 배달부라는 것 알겠는데,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사연만은 풍화된 지 오래다 누가 자기를 버린 겉봉투인가? 행방불명인지, 지금도 제자리에서 헤매고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를 땅거미가 힐끔댄다 그는 아직도 수취인을 찾지 못해 배달 중이고, 발자국 깊이에 담긴 어둠 한 홉을 읽지 못해 밝은 나는 아직 홀로에 도착하지 못했다


-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차주일 시집 / POSITION / 2017년
좋은 시다. 한국어는 언어학적으로 교착어(agglutinative language)에 속한다. 영어나 불어와 같은 굴절어(Inflectional language)처럼 단어를 변형시켜서 의미를 기하학적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굴절어는 명확한 전달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의미의 문제에서 파생되는 진실에 관해서는 좀 멀어지게 되었다. 교착어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굴절어보다 덜 하지만 진실의 모호함을 전달하는 데는 더하다. 그 모호함 속에서 길을 잃으며 우리는 보다 넓은 세계의 장면들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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