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유별 엄격한 유교사회
젊은 자식부부 이어주는 가막마루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된 오늘
어른이 줄 수 있는 가막마루는


유명 가문의 종택을 찾아가는 고택여행을 하다보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마주하게 된다. 얼핏 보면 지형과 지세에 따른 배치만 다를 뿐 그 집이나 저 집이나 다른 것이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지방에 따라 심지어 가문이 속한 당파에 따라서도 집의 배치나 형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굴뚝만 하여도 선교장의 지붕만큼 높은 굴뚝이 있는가 하면 구례 운조루처럼 굴뚝이 없는 맹굴뚝도 있다. 그런가하면 대전 동춘당처럼 태극팔괘가 있는 굴뚝과 미소 띤 얼굴이 새겨진 굴뚝도 있다. 다양한 문양은 팔작지붕에도 있다. 한옥에서 가장 품위 있고 중후하여 주로 사랑채에 쓰이는 팔작지붕의 합각면에는 기왓장을 깨고 자르고 하여 그 집의 가풍과 정신이 들어있는 문양과 글자를 새겼다. 쌍희囍자와 호로병을 비롯한 길상문이 현대회화를 방불하게 하는 충효당, 송죽도가 그려진 퇴계생가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집에는 가운데에 꽃이 있는 화초를 만들어 넣었다. 이는 가풍 이전에 가족에게 훈훈한 정을 불어넣는 서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정읍 김동수 집은 특이하게도 합각 면에 웃는 사람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벼슬하지 말고 살라’는 집주인의 가족 사랑이 표출된 그림이다. 이처럼 집에는 가족 간의 사랑을 표현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용마루 끝을 마감하는 망와는 악귀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귀면와를 만들어 세웠다. 보기만 해도 도깨비나 귀신의 얼굴이라 섬뜩한데, 경북 군위 한밤마을의 한천서당은 순진무구한 미소를 띤 얼굴모양의 망와를 얹었다. 씨족마을이라 일가 학생들이 공부했을 이 집에서 훈장은 매우 엄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진감래라, 어렵게 공부한 너희들이 어사화 꽂고 올 것을 미리 알고 웃고 있는 거야’란 듯이 망와는 푸근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야말로 후손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부조父祖의 자식사랑 중 가장 멋진 이름은 아마도 가막마루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혼인 후에도 아내는 건넌방에서, 아들은 작은 사랑에서 각기 거처하였고 한 달에 한번 아버지가 정해주는 길일에만 합방을 하였다. 우리시대 마지막 선비이며 효자인 경북 봉화 송석헌의 권헌조 선생은 혼례 후에도 할아버지 방에서 기거하였다. 젊음을 발산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보기 위하여 그는 할아버지가 잠든 사이 사랑채에서 건넌방으로 연결된 쪽마루를 통해 아내에게 갔다가 재빨리 사랑방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게 도둑처럼 몰래 아내 방으로 가려하니 통로인 쪽마루를 가만가만 다녀야 하였기에 예부터 가막마루라는 이름이 붙인 것이다. 겉으로는 엄한 체 하면서도 젊은 아들과 며느리를 생각하여 난간까지 설치한 가막마루는 그 옛날 엄격한 남녀유별의 유교사회에서 어버이가 할 수 있는 자식사랑 건축의 백미이다.
모두들 컴퓨터와 휴대폰에만 매달리다 보니 거실의 텔레비전이 필요 없는 오늘 날,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해주는 가막마루는 무엇일까. 올해도 5월 가정의 달에 어르신네들은 동네별로, 가족별로 고택 여행을 떠날 것이다. 먹고 마시는 데만 정신을 쏟지 말고 이런 가족사랑, 자녀사랑의 현장도 돌아보면서 자식에게 줄 새로운 가막마루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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