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가끔씩 보는 방송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방송이다. 유명한 방송이라 잘 모르는 분들이 없겠지만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유명쉐프들이 초대된 게스트의 냉장고 재료만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게스트가 원하는 요리를 만들어 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이 방송의 꾸준한 인기에는 여러 이유(요리대결, 연예인, 먹방 등)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제한’이라는 요소를 다른 요리프로그램보다 더욱 강화시킨 것이라 생각된다.
보통 최고의 요리라 하면, 유명한 쉐프가 최상의 주방에서 고급재료를 사용하여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 방송에서는 냉장고의 한정된 재료로 제한시간(15분)내에 게스트가 원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최고의 요리가 된다. 극적인 예를 들어보면, 게스트가 초딩입맛(?)의 요리를 원하는 경우도 있고, 냉장고에 요리재료가 거의 없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주어진 시간내에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 내는 쉐프들을 보면, 정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방송 편집의 힘이 있긴 하겠지만...^^)
요리와는 전혀 다른 업종의 일을 하고 있는 나 이지만, 이 방송을 볼 때마다 나는 매우 격한 공감을 하게 된다. 매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항상 제한된 부지, 촉박한 예산과 시간, 건축주마다 다른 개별적 요구사항과 창의적인 디자인에 대한 고민 등… 방송에서 나오는 쉐프들처럼, 건축사도 항상 제한된 상황을 잘 극복하여 건축주가 요구하는 최상의 건축물을 만든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다.
이 방송의 요리처럼 최고의 건축물의 요건은, 결코 좋은 자재와 기술, 넉넉한 예산 등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주어진 상황과 요구조건에 맞춰 얼마나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만드느냐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록 겉모습은 소박하고 허름한 재료로 지어진 건축물도, 해당 건축주에게는 최고의 건축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제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하여도 건축주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그 건축물은 실패한 건축물일 것이다.
예전 초년시절의 나는, 건물들의 겉모습만 보고 부족하고 아쉬운 점에 대해서만 비평 아닌 비판을 했던 적이 많았다. 이는 매우 편협하고 얕은 생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때까지 오랜기간 개인적으로도 발전이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건물을 바라볼 때 항상,  그 건축물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닌 과정을 유추하며, “이 건물이 왜 이렇게 지어질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나름의 이해와 고찰을 하고 있다.
지금 난, 감히 말한다. “모든 건축물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물론 그 이유가 합당하고 상식적이게 만드는 것은 건축사가 해야 할 목표이자 의무일 것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건축을 할 때 건축사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건축을 부탁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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