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중에서
반짝이는 부분
- 임재정


죄조차 길이라면 좋겠네

벚나무 벚나무 꽃 진 그늘에 숨어, 아름드리 소나무를 품어보는 일이 허리를 옥죈 관대 같아 그럭 아린 이승의 맛이다 밤이면 소쩍새 울고 낮엔 송홧가루 날린다 탁란 뒤안길의 뻐꾸기 날개짓이 어제의 흉터를 비집고 겹겹이 덧난다 아픔을 모르는 것은 여기저기 떠돌며 육신을 덜어낸 탓이겠지만

빈집 장독 묵은 장이 소금 알로 삭아 말그레해지는 날. 영원 빗장 지른 편백나무 울타리를 산책하는 이, 햇살 먹은 사금파리를 보았다 한다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임재정 시집 / 문예중앙시선 / 2018년
이 시를 계속 읽는다. 계속 읽으면 입에 단어들이 붙기 시작하고, 그럴 땐 ‘벚’, ‘빗’ 같은 말들이 번져오고, 그쯤이면 처음엔 리듬을 방해하는 받침들, 이를테면 ‘옥죈’, ‘관대’, ‘송홧’ 같은 말들이 익숙해지면서 나름의 리듬이 생긴다. 시가 그리고 있는 정서야 이미 처음 읽을 때부터 들어 온 것이지만, 시의 의미는 그제서야 생긴다. 의미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긴다. 그 의미들이 다시 시의 리듬을 타고 흘러갈 때, 시는 비로서 내 것이 된다. 나의 리듬으로 들어 온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