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5편 영화 16회 걸쳐 상영, 영화인과 건축인의 대담회 개최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제1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11월 19일(목)부터 22일(일)까지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극장 미로스페이스에서 열린다. 해외영화 5편, 한국영화 1편이 총 16회에 걸쳐서 극장에서 일반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를 통해 건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마련된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램과 특징 살펴본다.

▲ 제1회 서울국제건축영회제 포스터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우리나라의 여러 영화제들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지난 7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매주 회의를 진행해왔던 영화제 집행위원회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건축과 영화의 접점을 찾고 이를 통해 국내의 다른 영화제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우리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현재 국내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영화제들이 비교적 큰 규모의 국제행사로 치러지고 있지만,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다소 일반적인 편이어서 그다지 변별점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건축사’라는 특정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건축’이라는 특정한 예술 영역을 테마로 꾸려내는 영화제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회 영화제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보다 일반 대중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건축사’의 지위를 재고하도록 하고, ‘건축예술’에 대해서 안목과 교양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총 5편의 외국영화는 건축사를 주인공으로 한 극영화 1편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과 삶을 조명한 4편의 다큐멘터리들이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마천루>는 건축인을 희망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복사본 비디오테이프로 한 번씩은 보았음직한 작품으로, 전 세계의 건축영화제에서도 자주 상영되는 고전이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영국영화협회(British Film Institute)가 소장하고 있는 35mm 필름을 대여해 상영한다. 다큐멘터리 작품들에서는 노먼 포스터, 렘 콜하스, 프랭크 게리, 루이스 칸 등 세계 건축계의 거장들을 만날 수 있다.

먼저 <노먼 포스터의 거킨 빌딩>은 ‘거킨 빌딩’이라는 특정 건축물의 건설 과정에 대한 기록이자, 런던이라는 도시를 재창조하는 과정에 대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 아키텍트>는 영화에 관심이 있는 건축사라면 익히 익숙하게 알고 있는 작품으로, 루이스 칸의 아들인 감독 나다니엘 칸이 아버지의 궤적을 찾아 여행하며 기록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비교적 최근작인 <렘 콜하스: 도전과 혁신>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는 현대 해체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두 거장들의 작품 세계와 건축적 사고를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밖에 특별 상영프로그램으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마련해 한국의 전통미학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번 영화제는 건축사들이 관객들 앞에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대중들의 건축에 대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영화인과 건축인들이 상영작에 대해서 대담을 나누고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마련했다. 특히 이번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자인 김용미, 이성관, 신창훈 건축사를 비롯해, (주)희림과 (주)D&P 등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영화제에 참석해 작품을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영화인과 건축인의 대담 프로그램으로는, <마천루>의 원작 소설을 번역한 김원 건축사와 <시월애>를 통해 남다른 건축적 감각을 보여주었던 이현승 영화감독이 <마천루>에 대해 대담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또한 <취화선>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했던 주병도 미술감독이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권문성 교수와 대담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된다. <노먼 포스터와 거킨 빌딩>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이상준 교수, <마이 아키텍트>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정재용 교수가 게스트로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다. 그밖에 건축을 전공한 젊은 영화감독들인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불신지옥>의 이용주, <그림자 살인>의 박대민 감독이 <렘 콜하스: 도전과 혁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외에서 이미 몇몇 건축영화제가 꽤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경우 매년 수십 편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자국의 건축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영화제를 준비하던 시기에, 미국 동부의 버몬트에서 건축 및 디자인 영화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제 역시 미국의 한 건축사가 집행위원장으로서 추진한 것인데, 우연히 연락이 되어 이메일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주었고 또한 상영작 섭외에 직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앞으로 영화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이러한 해외의 영화제들과 네트워크를 좀더 튼튼히 하고, 한국의 건축 나아가 아시아의 건축을 더욱 널리 소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는 ‘건축사’ 그 자체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앞으로 더욱 재미있고 흥미로운 테마를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감독의 일련의 작품들을 건축의 관점에서 재조명할 수도 있고, 특정한 도시의 풍경들이 잘 드러내는 작품들을 통해 그 도시의 건축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영화의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건축의 역사적 가치를 되돌아보도록 할 수 있다. 이 모든 시도들은 건축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역할을 강조하고, 우리의 삶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를 고양시키고자 하는 작업이다. 비록 시작은 작고 미미하지만 앞으로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번 첫 행사를 알차게 치러내고자 한다.

 

<1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상영작 미리보기(총 6편)>

마천루 The Fountainhead (1949)
감독 킹 비더 | 극영화 | 35mm | 114분 | 미국 | 흑백
러시아 출신의 유대계 미국 여성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인 랜드(Ayn Land)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건축을 주제로 한 영화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고전 명작이다. 하워드 로크(게리 쿠퍼)라는 천재적인 젊은 건축가가 주류 건축계나 언론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좌절하며 갈등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로크는 고전적인 디자인과 대중들의 취향을 따르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만의 아이디어와 철학으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해낸다. 아인 랜드가 그려낸 하워드 로크는 집단의 여론이나 공공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창조력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식 이상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이러한 철학적 바탕으로 인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49년 국내 개봉된 바 있으며, 50년 만에 다시 필름으로 상영된다.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Sketches of Frank Gehry (2005)
감독 시드니 폴락 | 다큐멘터리 | 35mm | 83분 | 미국 | 컬러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LA의 디즈니 콘서트 홀 등을 설계한 지금 세기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하나인 프랭크 게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투씨>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시드니 폴락 감독이 자신과 오랜 우정을 나눈 프랭크 게리의 작품 세계와 작업 환경을 밀착해 카메라에 담았다. 해체주의 건축 양식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LA 산타모니카의 게리 하우스, 월트 디즈니 사를 위해 설계한 애너하임의 아이스하키 경기장 등의 건축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LA 디즈니 콘서트홀 완공 축하 연주회의 풍경도 담겨 있다. 미국 현대 예술계의 여러 유명 작가들과 음악가들이 직접 인터뷰에 응했다. 2006년 칸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2008년 타계한 시드니 폴락의 유작이기도 하다.

렘 콜하스: 도전과 혁신 Rem Koolhaas: A Kind of Architect (2008)
감독 마커스 하이딩스펠더, 민 테쉬 | 다큐멘터리 | digibeta | 97분 | 독일 | 컬러
최근 경희궁에 설치된 ‘프라다 트랜스포머’의 설계자인 당대 최고의 ‘스타 아키텍트’ 렘 콜하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렘 콜하스의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궤적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그의 건축 작품들의 혁신적인 면모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저널리스트이자 영화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의 희귀한 자료들을 볼 수 있으며, <정신착란증의 뉴욕>(1978)을 비롯한 콜하스의 저서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초창기 작업부터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 포르투갈 포르토의 카사 드 무지카, 중국 베이징 CCTV 사옥, 등 가장 최근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을 충실히 분석한다. 콜라주나 다이어그램 등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활용한 연출자들의 참신한 영상 제작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노먼 포스터와 거킨 빌딩 Building the Gherkin (2005)
감독 미리암 폰 악스 | 다큐멘터리 | digibeta | 89분 | 스위스 | 컬러
정식 명칭은 ’30 세인트 메리 액스(30 Saint Mary Axe)’. 그러나 긴 타원형의 모양 때문에 ‘오이지’를 뜻하는 ‘거킨(Gherkin)’이라는 별칭이 붙은 ‘거킨 빌딩’.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 경이 설계하고 스위스의 보험회사인 ‘스위스 리(Swiss Re)’가 클라이언트인 이 빌딩은 착공 당시부터 큰 논란에 휩싸였다. 9/11 직후 본격 공사가 진행된 이 빌딩의 건설은 과연 런던에 새로운 건축적 아이콘을 세우는 것이 정당한가, 그리고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라는 뜨거운 여론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스위스 여성감독 미리암 폰 악스는 이 빌딩 건설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3년여 이상의 시간을 투입해 이 빌딩이 완공되어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을 영상에 기록했다. 설계자의 고민, 건축주의 이해관심, 도시계획가의 공공에 대한 배려 등이 어떤 충돌을 빚고 어떻게 조정되어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마이 아키텍트 My Architect (2003)
감독 나다니엘 칸 | 다큐멘터리 | 35mm | 116분 | 미국 | 컬러
에스토니아 태생의 미국 건축가인 루이스 칸(1901-1974)의 궤적을 그의 아들 나다니엘 칸이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예일대 아트 갤러리, 미국 캘리포니아의 서크 연구소, 그리고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등의 작품을 남긴 루이스 칸은 현대 건축의 물꼬를 크게 바꾼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사는 복잡했으며 73세에 거리에서 객사한 채 발견된 그의 죽음 또한 순탄치 않았다. <마이 아키텍트>는 루이스 칸의 사생아인 감독이 세계를 여행하면서 아버지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담았다. 감독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 루이스 칸의 동료였던 필립 존슨 등의 대가들, 그리고 그와 사랑을 나누었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취재한다. 2004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5년 EBS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통해서 TV에 방영된 바 있으나, 이번 영화제에서는 35mm 필름으로 공개된다.

취화선 (2002)
감독 임권택 | 극영화 | 35mm | 120분 | 한국 | 컬러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인 임권택의 98번째 영화인 <취화선>은 구한말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장승업은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과 함께 조선 화단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지만, 그에 대한 실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시나리오를 쓰고 국내 미술 전문가들이 대거 자문 역할을 한 이 작품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장승업의 삶을 되살려낸다. 천재적인 그림솜씨를 지녔으나 떠돌이로 살며 기녀들과 사랑을 나누고 그 어떤 일체의 세속적 권세도 탐하지 않았던 장승업. 영화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구한말 격변기를 한 예술가가 어떻게 돌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미’가 무엇인지를 탐색해온 임권택 감독 영화세계의 한 정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물론, 19세기 말의 서울 종로 거리를 재현한 국내 최대 규모의 오픈 세트 등도 볼거리다. 2002년 한국영화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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