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
- 이순현

여기로 와서 우는 저쪽

아무도 받지 않는다

칼을 물고 잠든 칼집이거나
맨땅에 부어놓은 물이거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정의 극지

한 사람이 고통받아도
지축은 휘청거린다

덫에 걸린 부위를 물어뜯어서라도
자유가 되고 마는 짐승들의 서식지

여기로 와서
울고 또 울리는 저쪽

경로를 벗어난 시간이
다른 몸을 찾아 배회 한다

누구의 고통도
혼자 독점할 수는 없다

저쪽이 와서 우는 여기

흰 국화꽃이 시들고
횡단보도가 새롭게 그어졌다


-『있다는 토끼 흰 토끼』이순현 시집
   문예중앙시선 / 2018
이 시를 읽으며 ‘자유(自由)’가 뭘까 생각했다. ‘스스로에게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란 한자의 해석은 일본번역어고, 동아시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던 단어다. 후한서에 “눈썹을 붉게 물들인 무리들이 황궁을 침범해 자유(自由)로했다”라는 기사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자유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그저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는 “한 사람이 고통받아도/지축은 휘청거린다”는 그 지점이 바로 자유라고 말한다. 그렇다. “누구의 고통도/혼자 독점할 수는 없다.” 4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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