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 임곤택

우울한 정신을 준 아버지에게
집 아닌 곳을 처음 보여준
그 마을 성당에게
무엇이든 함께 마시고 싶던
고1 때의 여학생에게
그로부터 3년 뒤 겨울에게
군청 앞을 지나는 4킬로 남짓
등굣길에게
마당의 박하 잎과 박하 향,
그 중독의 강림에
거울을 부수게 한
베이스 기타 굵은 저음에
거짓말을 가르쳐 준 국어 시간에

손을 들어 세우려던 구름과
휘파람으로 돌아보게 하려던 구름과
허락을 얻지 못한 여러 믿음에게
환청을 일으키며 트럭이 지나갔고
농부와 농부의 아내들에게
그들의 아들과 딸들에게
고통인 것과 지루한 것을
같은 음색으로 느끼는
자유를 준 당신에게

-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임곤택 시집 / 문예중앙시선 / 2017
당연히 시는 우리가 쓰는 언어에 기반한다. 누구나 쓰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말은 시가 되고 어떤 말은 그냥 말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시인은 말이 가진 범용성에 바탕하면서도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 이 평범한 말의 조합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 이 시는 잘 보여준다. 제목이 ‘추신’이다. 덧붙이지는 말이지만, 나는 이 시를 시에 덧붙이는 말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시에 덧붙이는 말이든 시 자체에 덧붙이는 말이든, 시인이 시에 말을 걸고 있다. 전 생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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