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시행하는 31종 시설물 내진설계 공통기준과의 정합성 확보, 일관성 유지를 위해 국가표준 한국건축규정 개발연구단이 작성한 건축구조기준의 내진설계 개정안이 건축물 지진안전 확보라는 연구목적이 퇴색된 채 구조기술사 업역확장에 활용되도록 결과가 나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름 아닌 대한건축학회와 국가표준 한국건축규정 개발연구단이 2월 27일 개최한 ‘건축구조기준의 내진설계 개정안 공청회’에서 내놓은 건축구조기준의 내진설계 개정안 내용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작년 4월 17일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가 건축물을 포함한 31종 시설물의 내진설계기준에 적용할 ‘내진설계기준 공통사항’을 반영할 것을 국토부에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시간도 촉박하고 연구비예산도 확보돼 있지 않아 이미 상당부분 내진설계기준 연구를 진행한 국가표준 한국건축규정 개별연구단에서 급하게 연구를 추진해 개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9월 연구진이 구성돼 5개월 만에 급조된 것이다.
건축구조기준 개정안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조설계도서의 내진구조성능의 확인, 시공상세도서의 내진구조성능의 확인, 시공 중 내진구조성능의 확인, 유지관리 중 내진구조성능의 확인을 모두 내진설계책임구조기술자가 수행해야 하고, 확인을 받도록 돼 있다. 설계, 감리, 설비영역, 유지관리까지를 총 망라한다. 올 초 학교시설 내진설계 기준에 내진설계책임구조기술자의 자격이 ‘건축구조기술사’로 한정된 걸로 미루어볼 때 사실상 구조기술사에게 건축구조부분을 일임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럴 경우 건축법상 ‘건축물의 구조기준 등에 관한 규칙’ 관련내용과 위배되며, 이는 건축법내 건축구조부분의 분리·독립을 위한 포석으로서 구조기술사 업계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적’ 기준개정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법에 담아야 할 내용이 기준에 담기는 것도 법 체계를 깨뜨린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구체적인 업무절차 및 업무내용이 빠져 있어 이대로는 현장혼란만 가중될 우려도 크다.
이번 건축구조기준의 내진설계 개정안은 행안부 ‘내진설계기준 공통사항’ 반영이라는 본래 연구발주 취지와 부합하지 않고 구조기술사 업역확장에 활용되도록 내용이 편향돼 있어 문제가 크다. 게다가 국민안전을 위한 국가 R&D과제임에도 이렇게 졸속·밀실로 추진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작년 7월부터 연구에 관여해온 관계자도 그동안 진행된 내용과 많이 다르다고 한 걸 보면 그 추진 배후에 대한 의구심도 떨칠 수 없다.
경주, 포항지진으로 건축사를 위시한 사회 전 분야가 국민안전을 위한 각고의 노력, 뼈를 깍는 자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관련 연구를 일부 엔지니어측 업역확장에 활용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신뢰성을 격하시키는 일이다.
공청회에서 연구관계자가 지적한 것처럼 내년 1월 기준시행을 앞둔 가운데 연구발주 취지에 부합되는 쪽으로 개정안 방향을 재설정해 연구를 추진해줄 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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