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 이종형


각각 일행이 있는 한 사내와 여자가
모리화하는 밥집 식탁에 각각 자리 잡아
음식을 주문했다
사내는 보리비빔밥에 고추장을
너무 풀어 넣어 목이 막혔지만
건너편 식탁의 여자는 가만가만
들깨수제비를 입에 떠 넣었다

식사를 끝내고
먼저 일어서는 여자와
딱 한 번, 눈길을 마주친 사내
첫사랑은 뒤따라가지 않는 거라던
오래된 충고가 떠올라
끝내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달달하고 애틋했던 것인지
맵고 얼얼했던 것인지
지나간 시간에 관한
기억이 휘청거리는 오후

봄 벚꽃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중에서
이종형 시집 / 삶창 / 2017
어느 밥집에서 우연히 첫사랑의 여자를 만난다. 둘은 서로 부러 아는 체하지 않는다. 묵묵히 밥을 먹고 있지만 그 감정은 보리비빔밥의 맛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달달하고 애틋했던” 사랑과, “맵고 얼얼했던” 헤어짐. 들깨수제비의 고소한 맛은 아마도 남자의 바람이거나 살짝 뒤틀어진 질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자가 먼저 일어나고 식당을 나오니 밖은 봄이다. 꽃도 그렇지만 우리들의 시간도 그렇게 무심히 간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