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이 잠든 곳
- 박신규

새끼 밴 생구(生口) 따위가 사람보다 더 대접받는다고, 면도날 하나를 여물에 넣고 두근두근 내가 더 야위어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내 혀 깨물고 죽어도 울지 말거라, 속병으로 약봉지를 끼고 사는 노모는 걸핏하면 일을 때려치우는 자식이 걸려 잠을 거른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또다시 사표를 던진 날 어머니 생각에 사골을 사러 가서 보았다 간혹 소의 몸에 서려 칼끝도 받아낸다는 그것, 장기인지 쇠붙이인지 모를 덩어리가 칼잽이의 손에 검붉은 김을 내뿜고 있었다

선무당같이 시끄럽게 떠들던 돌팔이가 슬쩍 소 주둥이에 밀어넣은 건 자석이었다 이튿날 거짓말처럼 벌떡 소는 일어났고 방바닥을 구르던 나의 복통도 잠들었는데

잠들지 못하는 장기
숨 가쁜 자력은 다 늙어 쇠하도록
끌어안은 날
잠재우고 있다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박신규 시집
  창비 / 2017
소같은 초식동물들이 급하게 풀을 뜯다 보면 주변에 떨어진 못이나 쇳조각들을 같이 먹는 수가 있다. 그럴 때 쇳조각이 소의 몸에 박히는 일을 예방하거나 문제가 생긴 소를 치료하기 위해 소의 위에 자석을 넣어준다. 자석은 첫 번째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두 번째 위로 넘어가 자리를 잡기 때문에 소가 쇳조각을 먹어도 두 번째 위에 있는 자석에 붙어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넘어가지 않게 된다. 이 기묘한 치료법을 소재로 시인은 면도날과 복통과 자신의 생을 통째로 시의 여물통 속에 던져 넣어버리고 있다. 독한 시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