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받쳐 주인 구한 충견들
벽사의 영수며 오륜도 갖춰
우리도 이런 회장 뽑아서
애완견처럼 사랑 받아보자


“얼마 전에 우리 사장한테 문자가 왔더라고, 문상 오라고. 그래서 장례식장에 갔더니 글쎄 영정사진에 치와와가 떡하니 있는 거야. ‘이거 절을 해야 돼, 말아야 돼’ 하는데 사람들이 다 큰절을 하데. 사장은 상주 자리에 앉아서 울고 있고… 내 참 살다 살다 개한테 큰절해 보긴 또 처음이네. 그리고 이것도 장례식이라고 부조금도 받더라. 나 치와와한테 5만 원 내고 왔다.” 사실 부조금 5만 원은 약과야. 내가 그 치와와 돌잔치도 갔다는 거 아니냐. 금을 반 돈이나 내고 왔다!!”
몇 년 전 모 방송국의 ‘웃음이 나오는 편지’를 듣고 지어낸 이야기라 치부했는데, 며칠 전 필자의 친구가 자기 개 장례식을 치뤘다며, ‘스무명이 조문을 왔다’란 말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수많은 개 장례식장 광고와 납골당에 유치원도 있었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심한 상실감으로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겪게 되는 펫로스증후군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다는 통계와 애완동물 기르는 사람이 천만 명이란 것도 눈에 들어왔다. 이만하면 ‘개 팔자가 상팔자’인데, 역사를 더듬어보면 주인에게 충성스런 우리 토종개들에겐 납골당 아닌 총塚으로 불리는 무덤도 있고, 비석도 있으며 벼슬을 받은 개도 있다.
고려시대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완한 최자의 보한집 중권 서른다섯번째에 보면 “김개인이란 사람이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매우 사랑하였다. 어느 날 외출하는데 개도 따라나섰다. 그가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자는데, 들판의 불이 점차 번져오고 있었다. 개는 옆의 시냇물에 몸을 적신 후 주인 주변의 풀에 뒹굴어 불길을 막고는 힘이 다해 죽었다. 개인은 깨어나서 개의 무덤을 만든 후 지팡이를 꽂았는데 나중에 나무가 되니 오수라했는데, 그 동네의 이름이 되었다. 후대사람이 노래했다. ‘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 부끄러워하지만 人恥呼爲畜 / 공공연히 큰 은혜 저버린다네 公然負大恩 / 사람으로서 주인위해 죽지않으면 主危身不死 / 개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나 安足犬同論.’
고려충렬왕 때 개성에서는 개가 사고무친의 눈먼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이고 물을 먹여 키웠으므로, 관청에서는 개에게 벼슬을 내려 충직함을 기렸다고 한다. 남북한에는  이런 개의 무덤과 비석들이 스물다섯 곳에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세눈 또는 네눈박이 개를 벽사辟邪용 영수靈獸로 여겨 매년 정초에 곳간문 등에 그려 붙여 귀신이나 도둑을 막고자 하였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개를 의인화시켜 개의 형태와 습성을 오륜에 비유하기도 했다. ‘주인에게 덤비지 않는 것’을 군신유의君臣有義, ‘큰 개에게 작은 개가 덤비지 않는 것’을 장유유서長幼有序, ‘아비의 털빛을 새끼가 닮은 것’을 부자유친父子有親, ‘때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 것’을 부부유별夫婦有別,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의 개가 다 짖는 것’을 붕우유신朋友有信에 비유 하였다.
인간에게 최초의 가축인 개처럼 부정과 긍정이 극과 극인 동물도 드물지만, 역사에 기록된 개가 아니어도 주인을 향한 충성심은 귀소본능으로 증명된다. 이제 이 달에 뽑을 새 회장은 개처럼 회원을 위해 충직하고 충성할 후보를 선택하자, 그리하여 우리도 애완견처럼 극진한 접대와 사랑을 받아보자. 그리고 3년 뒤 회장의 퇴임식에는 무술주로 건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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