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 40 ― 벽
- 강세환

벽을 바라볼 때가 있다
시 한 줄 쓰지 못한 날은
벽을 무너뜨려서라도
시 아닌 것들을 다 무너뜨리고 싶다
한방에 무너뜨리지 못하면
저 벽처럼 입 닥치고 있을 것!
저 벽처럼
아무것도 모른다 할 것!
시도 잊을 것!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해도
다 잊은 것도 아니다
저 벽만 힘든 것도 아니다
옛말에 문을 닫으면
깊은 산중이라더니
이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또한 깊은 산중이어라

-『우연히 지나가는 것』강세환 시집
  오비올 기획선 / 2017
끝에 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닥을 쳐야 올라 올 수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잃을 게 없을 때 활로가 열린다. 이 시에서 벽은 여러 가지 역설을 보여주고 있는 매개체다. 벽을 무너뜨려서라도 시를 얻고 싶은 절박함 속에서 그 벽을 보며 시인은 태도를 배우고, 무너뜨려야 할 벽이 깊은 산중 같은 풍경이 되기도 한다. 시 앞에서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런 시가 다 나왔을까? 굳이 선승처럼 면벽을 하지 않더라도 시인에게 벽은 이미 하나의 화두고 깨달음이다.
<함성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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