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리공
- 김이듬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있다 수리공은 오지 않는다 머리위로 먹구름 같은 기차가 지나간다 매시간 정각마다 범람하는 햇빛은 턱밑까지 흘러내린 눈물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우리는 밤의 늪에서 기어 나온 악어 떼처럼 공포를 모르고 가끔은 살아 있다고 착각한다

내가 무너질 때 풀숲은 우거지고 숲에서 끊어진 기찻길처럼 아무도 도착하지 않는다 이 마을에는 수리공이 없다 큰 트럭으로 실어 나른 시채 더미에서 꿈틀거리던 우리는 몇 발짝 움직이기도 전에 기억을 잊어버린다 망각은 강물에 손바닥을 묻는 것처럼 쉬웠다 나는 고문 후유증으로 감정이 풍부해졌지만 사용할 데가 없다

오늘 나는 형무소 취사장에서 나와 집단 분향소까지 갔다 학생들의 소풍이었다 서대문 앞에서 돌을 깼다 회향풀이 빽빽한 강둑에서 쇠를 두들기고 자른다 파이프와 철조망을 머리 높이 들었다가 놓았다 타워크레인은 백 년 전 놀이터처럼 부식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정사진 속에서 웃는다

 

-『표류하는 흑발』중에서 / 김이듬 시집 / 민음사 / 2017
폐허의 풍경이지만 거기에, 폐허에 사람들이 살아 있으므로 폐허는 아니다. 폐허는 사람들이 따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풍화된 빈터를 가르킨다. 사람이 살아 있는 곳은 거기가 어떤 풍경이라 하더라도 폐허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자주 폐허에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가 폐허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때가 있다. 그것은 공간의 폐허가 아니라 시간의 폐허다. 그럴 때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정사진 속에”있는 것 같다.
<함성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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