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구조기술사에게만 ‘학교시설 내진성능평가, 보강’ 맡기려는 교육부

구조 등 내진보강에만 몰입해 건축물 가치, 공간 안전·활용성 훼손 우려
내진보강 때 구조계산뿐 아니라
공간적 안전성과 장래 교육환경 적합한 공간 재배치도 고려돼야…건축사 참여 필수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이 개발중인 ‘학교시설 내진설계 기준(이하 학교 내진설계 기준) 및 내진보강 매뉴얼 개발’에서 상식적으로 건축물의 구조안전 확인, 공간 안전성·기능·디자인을 위해 참여해야 할 건축사가 배제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학교 건물 내진보강 사업은 엄연히 건축법상 허가사항인 대수선에 해당함에도 학교 내진설계 기준은 책임구조기술자를 건축구조기술사로 한정하고 있어 기술적 차원의 내진보강에만 몰입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건축물의 가치, 공간 안전과 활용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10월 12일 대한건축사협회(이하 사협)에 따르면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이 전국 학교시설 내진보강을 위한 ‘학교시설 내진설계 기준’과 내진성능평가 및 보강절차와 방법을 표준화한 ‘통합 내진보강 매뉴얼 개발’을 추진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올해 특별교부금 국가시책사업으로 추진하는 ‘학교시설 안전강화 사업’의 일환으로서 행정안전부와 함께 성안중이다.

◆ 교육부, 2035년까지 학교시설 내진보강 예산으로 총 5조 원 투입 계획

교육부가 이처럼 학교시설 내진보강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지난해 9·12 경주 강진 이후 내진성능 확보 시급성이 제기돼서다. 교육부는 작년 경주 지진관련 조치계획으로 학교시설 내진보강 사업의 조속한 완료를 위해 2016년 673억 원 수준의 예산지원을 올해부터 매년 2,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2017년 교육부 업무계획에 따르면 내진보강 강화를 주요 추진과제로 선정하고 교육부는 올해부터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유·초·중·고등학교의 경우 연 2,500억 원씩, 국립대의 경우 연 250억 원을 지원해 2035년까지 총 5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학교 내진보강을 완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해 10월 건물 내진등급 등 학교시설 내진설계 기준 보완 및 내진보강 매뉴얼을 보급한다고 밝혔다. 또 9월 28일 ‘제6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생활안전분야 시설투자를 늘리기로 하며, 각 시·도교육청의 추경 1조 원을 활용해 내진보강 등 학교 안전시설을 확충하고 석면제거 등 노후 교육환경개선사업을 확대키로 한 바 있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학교시설 내진설계 기준(안)’에서는 ‘지진·화산재해대책법’에 근거를 두고 학교건축물의 내진구조성능평가 및 설계, 시공, 감리, 안전진단 등 관련업무를 각각 책임지고 수행하는 책임구조기술자의 자격을 ‘건축구조기술사로 한정한다‘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A건축사는 “학교 내진설계기준에 건축물과 공간환경의 안전을 위해 건축분야를 포함해야 하며, 건축물의 모법이라 할 수 있는 건축기본법에 근거해 적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가령 학교 내진보강 때 내력벽을 설치한다든가 기둥과 보가 커진다든지에 대해선 전혀 고려 없이 기술적으로만 접근하고 있어 총괄컨트롤 차원에서 건축물의 설계, 감리책임이 있는 건축사가 반드시 참여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내진설계기준 초안대로라면 학교 건축물 및 공작물의 내진성능 평가 및 내진확보를 위한 설계도서의 작성, 시공, 시공상세도서의 구조적합성 검토, 공사단계에서의 구조적합성과 구조안전의 확인, 유지·관리·리모델링 단계에서의 구조안전 확인, 구조감리 및 안전진단 등은 건축구조기술사의 책임하에 수행된다. 건축사업계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B건축사는 “내진보강 때엔 기존 건축물에서 튀어나와 보강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구조물이 세워질 경우 단순한 구조계산에서 그치는 게 아닌 학생의 활동을 위협하는 공간적 안전성과 장래 교육환경에 적합한 공간 재배치 등이 필요할텐데 이 경우엔 건축사가 종합적 판단을 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 모든 학교시설 건축, 대수선 등 교육부 승인하에 자체처리

또 현행 건축법상 내력벽 및 기둥과 보를 증설 또는 해체하거나 그 벽면적을 30제곱미터 이상 수선 또는 변경하는 것은 허가대상인 대수선에 해당한다. 교육부는 내진보강 시 수반되는 대수선을 허가절차에서 건축사의 정상적인 자문 및 역할 없이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건축물 안전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는 지자체가 아닌 교육부 승인만으로 이뤄지는 폐쇄적 학교시설사업 시행방식에 원인을 두고 있기도 하다. 교사·체육관·기숙사 등 학교시설사업은 현재 학교시설사업 촉진법에 따라 모든 학교시설의 건축 및 대수선 등을 할 경우 지자체가 아닌 교육청 승인하에 이뤄진다. 선행하는 법률을 무시하는 상식 밖의 운영이자 교육부 아래서 지자체가 손도 못대는 ‘치외법권’인 셈이다. 아울러 내진보강 시 기존 건축물의 적용대상을 세부적으로 구체화해 효율성과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A건축사는 “학교 내진설계 기준안에선 기존건축물과 구조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증축을 행할 때 전체구조물을 신축구조물로 취급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대부분의 증축건축물은 기존 건축물과 연결통로를 계획하는데, 기준대로라면 기존건축물 모두가 내진보강 대상에 해당돼 내진보강을 해야 한다. 이는 효율성·경제성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아 세부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부는 이번 학교 내진설계 기준(안)을 토대로 올 12월 공청회를 예정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기준을 시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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