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규모 감리자로 지정되어 설계자에게 감리에 필요한 도서자료를 요청했다. 얼마 후 받은 도면은 내가 보기에 공사를 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단순히 허가를 위해 필요한 도면이었고, 더욱이 앞·뒤도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요즘 설계사무실 인력난의 영향 때문에 우선은 허가를 위한 도면이라 생각하고 추가 자료를 요청하자 돌아온 답변이 “현장에서 알아서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것이다. 황당한 이야기이다. 현장에서 알아서(?) 할 것을 염려하여 관리·감독하는 제도가 감리제도이고, 그래서 감리자를 지정하는 것이다. 특히 소규모 건축물은 건축주가 직접시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전문가와 상의하여 공사를 진행해야한다. 감리업무의 수행과 책임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감리자가 설계자의 구체적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설계자 의도를 파악하고 공사현장에 반영되게 하려면, 작성된 도면에는 어느 정도는(?) 의도가 묻어나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최소한 허가만을 위한 불충분한 도면으로 공사가 진행되지는 말아야하지 않을까? (다행이 이 일은 추후 추가 자료를 받고 진행됐다.)
도면작업이 익숙하기 않았던 건축사사무소 신입 시절. 도대체 설계도면에는 무엇이 표현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건축법에 허가, 착공, 그리고 실시도면에 관한 사항이 명시되어 있기는 했으나 신입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쩔 줄 모르고 몇 날 며칠을 보내다가 일단 무엇이든 해서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나름(선배들의 자료를 참고해서)의 도면을 작성하였고, 작성한 내용으로 소장님(건축사님)께 검토를 받던 중 “도면은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의도를 어떻게 보여줄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쉬울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고, 항상 그 생각을 염두해 두고 도면을 작성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게 됐다.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마음. 더구나 자신의 마음(생각)을 알아 달라는 것을 전제로 쓰게 되는 연애편지는 오랜 시간(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랑에 빠져 애타게 써 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도면 작성에 임하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 도면이 엉망이었다는 의도를 기분 나쁘지 않게 듣기 좋은 말로 둘러 이야기 하셨던 것 이지만, 그때 소장님(건축사님)의 이야기는 아직도 가슴깊이 새겨져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되새기게 된다.
작게는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표현하여 시공자에게 그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전하고 도와주는 전문가가 ‘건축사’이다. 그렇다면 건축주 혹은 시공자에게 전해질 설계도면은 오랜 시간과 고민이 묻어있는 연애편지처럼 작성해야 하지 않을까?
비단 설계도면 뿐만이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라도 그 마음이여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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