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건축주 부부와의 첫 만남 자리였다. 인상이 너무 좋아 보인 두 분은 택지개발이 한창인 양산의 어느 대지에 두 분의 소원이었던 조그만 주택을 의뢰했다. 지구단위 계획에 의하여 규모 및 용도가 지정된 대지였다. 첫 만남자리에서 건축주 두 분은 우리 팀에게 설계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며, 건축설계의 과정과 고민을 너무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셨다. 매번 새로운 생각이나 공간이 떠오르면 먼저 연락을 주셨고, 뭔가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상의할 것이 있으면, 주저 없이 먼 길을 마다하고 사무실을 방문해주셨다. 한번 시작한 회의는 2~3시간을 연속하기 일쑤였고, 60 여일의 계획 설계 끝에 두 분의 맘에 꼭 드는 설계안이 확정됐다. 주택이 완공된 후에도 1층 상가의 임대계약 전 임차인의 업종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연락을 주셨다. 아무래도 당신이 결정하시는 것보단 직접 설계한 우리가 건물을 제일 잘 알고, 따라서 어떤 업종이 1층에 들어오는 것이 건물에 어울리는지를 판단해 달라는 내용이다. 어느 건물주가 건축설계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실까?
15년여의 설계실무를 거쳐 건축사로서의 업무를 시작한지 1년 정도 되었지만,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건축주들은 건축설계의 가치보다는 부동산의 재산가치가 먼저인 사람들이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위해 한계 규모에 가까운 설계만 해온 나로서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토록 건축사를 이해하고, 건축설계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알아주는 건축주를 만나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동안 건축주와 건축사가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계획된 공간은 결국 입주자가 먼저 알아주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주택보다는 건물의 형태와 공간이 디자인된 주택이 건축주에게 더 많은 수익을 주는 것 같다. 예전과는 사회와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같은 기능이라도 값이 비싸지만 더 예쁘게 디자인된 것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건축설계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건축설계는 건축주가 막연하게 꿈꿔오던 건축물을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능과 형태와 구조를 구체화하고 시공 가능한 도면을 작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오는 고민과 시행착오는 오롯이 건축사의 몫이다. 건축사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인간의 삶까지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임을 되뇌이며, 디자인과 공간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설계에 반영되고, 그에 대한 대가도 합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고민과 숙제를 함께 안겨준 건축주 부부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고,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고민하며 함께 해준 상상인건축사사무소 장용준 건축사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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