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사회 속 민간 속에 싹트고
관은 지원, 폭을 수용할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건축문화는 보여주는 것이 아닌
누리는 것이며
전시하는 것이 아닌
살아나가는 곳
전시행정, 전시문화보다는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2017년 9월은 대한민국 건축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장을 열고 있다.
세계건축사연맹 UIA 2017 서울대회와 같은 국제 대회가 열리고 매년 열리던 서울건축문화제가 9회째를 맞이 해서 도시재생과 리모델링의 상징으로 떠오른 문화비축기지 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여기에 서울시는 9월 2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라는 도시브랜드를 알리고자 비엔날레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아울러 대한건축사협회도 매년 해온 제9회를 맞이하는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그 시기에 맞춰서 17일간 서울곳곳에서 열고 있다.
다채로운 행사들이 가을의 계절을 틈타 모두 비집고 나오고 있다. 풍성한 9월이다. 하지만 이를 준비하기 위해 수 많은 건축계의 종사자, 학생들이 저급의 비용 또는 자원봉사, 재능기부의 형식으로 수개월동안 본인들의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일은 문화계에서 만연하다. 다는 아니지만 특정 권력을 가진 집단이 어떠한 명분으로 그들의 재능을 헐값에 이용하려고 한다.
수많은 학생들은 차비도 안되는 돈을 받으며 대학에서 요구하는 자원봉사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를 충족시켜야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다 그렇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특정 권력을 가진 집단의 요구를 물리치기가 힘들다는 현실적 압박이 있다는 것이고 그들은 이를 수용한 건축, 예술인들에게 본인의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명분으로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요청한다.
이 순환의 고리는 일반인들에게도 만연하다. 설계초안을 받아보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문화생활을 함에 있어서 전시관람 등도 무료로 보려한다. 가치를 얻고자 하는데 그에 맞는 지불은 꺼리는 사회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음에 우려가 크다.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공부를 하고 자기분야를 세워나가는데 그 대가는 없거나 터무니 없이 적다면 사회가 온전히 지탱을 할 수 있을까?
문화는 사회 속 민간 속에 싹터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은 지원과 그 폭을 수용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드는 거지 주체가 되는 순간 치정을 보여주려는, 보여주기 식 행사가 되기 십상이다. 누구든 다른 사람의 결과물이 멋지면 부럽고 탐난다. 나도 해야겠다는 식이 되어간다.
민간은 그 지출과 소비가 자연스럽게 무리해서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는 바로 결과로 나오기에 조심하고 성숙되어 갈 때 까지 수많은 실험을 스스로 한다.
관은 다르다. 관은 포장을 할 힘이 있고 결과물을 판단할 판단기능도 떨어질 수 있다. 너도 하니 나도 해야 된다는 관행이 남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서로 좌초하게 될 것이다.
2017년 9월은 건축문화의 풍성한 달이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다.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도 한정되어 있고 한 달에 본인들의 본업을 하면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모든 행사를 한시기에 한다는 건 무리가 있다.
9월의 건축행사를 몇 달간 준비하시던 분들도 이제 뒤로 제쳐놓았던 본인의 생계와 가정으로 돌아간다.
올해 9월을 위해서 건축계의 사람들이 총동원되었다. 무엇을 위해 이들이 총동원되었는지 되집어 본다. 그 의미가 무엇이고 그 의미대로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그리도 중요한 건지에 대한 질문을 해본다. 과연 우린 우리가 얻고자하는 건축문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건축문화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가는 곳이다. 전시행정, 전시문화보다는 진정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이웃, 동네 삶에서 찾고 스미듯 나를 감싸는 건축이 대한민국에 자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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