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인력수급 체계…건축서비스산업 기반 흔든다

신규인력 유입 점점 줄어 인력기반 붕괴 우려
5년제 건축학과 졸업생, 건축사사무소 취업률 2010년 50% → 2016년 41%

“어려워도 고용안정과 미래비전 제시해야” 지적도
합리적 조정 없이 건축사업무대가도 20년째 제자리

서울 A건축사는 1년째 건축사사무소 직원을 못 구하고 있다. 최근 지자체 설계공모에서도 당선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연초 사원 한 명을 가까스로 채용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나가버렸다. A건축사는 “요즘 건축사사무소에 오려는 젊은이들이 없다. 있다 해도 신입은 사무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인력수급이 안되니 결과물 납품기한에 맞추려 울며 겨자먹기로 프리랜서를 고용할 수 밖에 없는데 몇 년 전만해도 프리랜서 한 명 고용하는데 한 달 400∼500만 원이 소요됐다면, 요즘은 한 달 700∼800만 원이다. 직원이 없으니 새벽 귀가는 예사고 고비용 지출구조가 돼 이익도 나지 않아 정신적·육체적으로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직원을 구하지 못하는 인력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일자리 부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정작 건축사사무소는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일자리 미스매치’, 이른바 인력수급의 불일치 현상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대부분의 건축사사무소엔 완전히 딴 세상 얘기다. 특히 지역의 경우엔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토로한다. 있다 해도 건축사사무소에서 요구하는 수요와 대학의 교육이 맞지 않아 직원이 일정 수준 역량을 갖출 때까진 건축사사무소엔 일종의 재교육 개념의 추가비용까지 수반된다. 그나마도 직원의 중도 퇴사·이직률도 높다.
B건축사는 “요즘 건축학과 졸업생들 중 건축을 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열 중의 2~3명 뿐이다. 게다가 건축학과를 졸업해도 실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 3년 정도는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특히 지역 건축사사무소는 실무능력을 갖춘 신규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건축서비스업 인력수급 기반이 갈수록 심각해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에 따르면 2010년 졸업생 중 건축사사무소 취업률이 50.29%에 달했으나 2016년 41.33%로 떨어졌다. 2010년 졸업생 855명 중 430명이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했는 데 반해 2016년에는 1,517명 중 627명만이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했다. 6년 사이 졸업인원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건축사사무소 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 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에 건축학과 졸업생들 발길 돌려

건축사업계가 이처럼 인력수급난에 시달리는 이유는 수주위주 사무소 운영에 따른 과당경쟁과 저가수주 관행, 이것이 건축사사무소 경영악화로 이어지며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는 열악한 근로복지 환경, 저임금 구조 탓이 크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경우엔 박한 연봉과 과중한 업무로 생활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건축사 업무대가도 20여 년간 합리적 조정없이 제자리다. 최근 건축도시공간연구소도 ‘건축서비스 품질제고를 위한 공공건축 설계 대가기준 합리화 방안연구’와 ‘건축물 안전확보를 위한 건축물 공사감리 대가기준 개선 연구’ 보고서를 통해 건축사 업무대가가 지난 20여 년간의 업무환경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본지 2017년 7월 16일자 보도> 이처럼 20년째 물가상승 반영 없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건축사업무대가와 맞물린 업계 전반의 인건비 수준이 낮아지면서 당연히 사무소 근로환경 또한 좋을 리 없다.
건축사사무소 신규인력 수급부족은 장기적으로 건축서비스산업 성장동력을 잠식한다. 최근 ‘경쟁력 확보를 위한 건축사사무소 인력 수급에 관한 연구’에 착수한 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의 이예영 연구원은 “건축시장에서는 건축주의 다양한 요구·새로운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전문적 기술과 지식을 갖춘 우수한 건축전문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반해, 시장에서는 인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어 이러한 인력 미스매치는 성장을 갉아먹어 결과적으로 산업기반을 취약하게 한다”고 지적하며 건축사사무소 인력수급을 위한 방안 마련과 젊은 인재를 끌어들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실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지 않거나 건축사사무소에 고용되지 않은 채 프리랜서 형태로 건축설계업무를 수행하는 사업주와 피고용인 사이 중간지대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양성하고 있다. 근로자도 사업자도 아닌 모호한 종사상 지위로 편입되어 일, 소득, 삶 여러 면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많이 노출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프리랜서의 노동과 위험(2013년)’ 보고서를 보면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건축설계 프리랜서에 진입하는 것은 일자리와 소득에 있어 불안정과 위험을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수행하는 업무에 걸맞는 보수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근무시간을 요구하는 건축사사무소보다 건축사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프리랜서의 길을 택하고 있다 밝히고 있다.
B건축사는 “1년 7, 8개월 일하는 건축설계 프리랜서의 길로 한번 빠져들게 되면, 짧게 일하고 큰 돈을 만지는 것에 익숙해져 다시는 건축사사무소에 복귀할 수 없다”며 “사무소 입장에서는 운영에 필요한 우수한 인력수급이 막히게 되고, 산업 전체로 보면 기술력·인력양성 등의 내실을 기할 수 없어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 “건축사 자정노력 필요하다” 의견도

업계의 자정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크다. 건축서비스산업이 우수한 젊은 인재들을 유치하려면 아무리 어려워도 고용안정과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
A건축사는 “아직까지 일부 건축사들은 과거 건축 호시절을 생각해 오히려 돈을 내고 건축을 배워야한다는 마인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건축사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지 않으면 인력수급난의 기형적 악순환의 고리를 헤어나올 수 없다”고 꼬집었다.
덧붙여 “건축사들이 업무를 수행하고 후불제로 대가를 받는데 이렇게 되면 언제 받을지 모르는 기약없는 일이 돼버린다. 반면 직원에게는 월급을 제때 지급해야 하는 문제로 경영에 어려움이 있어 업무대가를 받는 계약체계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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