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늘 해오던 일이였지만, 건축사를 취득하고 바라보는 설계라는 일이 새삼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익숙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설레임과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전환점이 되었다. 새로움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일이며,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희망이 가득한 것이다. 우리가 설계를 하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며, 희망을 채워주는 의미 있는 일인 것이다.
설계를 의뢰받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고뇌를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짓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부딪힐 만한 치열한 현실적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과 원칙을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고민과 건축주와의 끊임없는 소통과 교감, 나의 삶의 철학과 건축적 욕구가 만나 이루어진 결과물인 것이다. 과연 이런 결과물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 우리는 설계를 함에 있어 건축주를 대신하여 각 분야(구조, 설비, 전기, 토목, 조경등)를 진두지휘하고, 건축주의 연결고리로 서로의 의견을 조합하고 정리하여 좋은 건축을 위한 최선의 역할을 해왔다.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오른 천재적인 건축사들의 독창적인 패러다임 또한 혼자서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창작을 존중해준 건축주, 의도를 파악하고 표현해줄 수 있는 시공자, 건축사를 뒷받침할 건축학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혼자서는 어려우나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만들어낸 결과임이 분명하다. 결국 건축이라는 것이 나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닌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그것에 대한 고민과 답을 찾으며 생각과 마음을 맞춰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인 것이다.
하지만 건축이 서로의 협력과 소통이 중요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건축계가 처한 현실은 젊은 인재의 이탈을 체감하고 있다. 설계를 시작할 때의 기대감은 일을 할수록 노동의 정도에 비해 낮은 임금과 잦은 야근, 개인적 시간의 부재로 오는 피로감에 사기를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인재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리더가 그 영향을 끼친 건 아닌지...
서로간의 소통이 배제된 단순한 노동에 대한 접근으로부터 생기는 인식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나 또한 미완의 인간이라 현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아 실수를 반복했으리라.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또한 모두가 같이 풀어야할 과제일 것이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건축이란 쉬우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물을 지을 때, 사람들에게 건축물은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관계 맺음을 바라듯이, 소장과 직원사이, 직원과 직원사이, 건축과 각 분야별 사이에서도 갑과 을의 관계, 권위적인 주종, 상하관계가 아닌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원활한 소통을 한다면 서로 간에 무엇보다 큰 힘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좋은 건축주와 시공자, 그리고 평생을 같이할 건축 동료들... 그들과의 소통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건축이야말로 진정한 건축의 의미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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