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자전거
- 김승강

자전거가 한 대 내려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좁은 갓길인데도 그쪽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왔다 하마터면 정면으로 부딪힐 뻔했다 뒤돌아보니 월남 여자였다 월남 여자는 자전거를 타고 월남으로 곧장 내달았다 월남 여자가 가고 눈이 내렸다 눈 위에 방금 지나간 월남 자전거의 바퀴 자국이 찍혀 있었다 월남 자전거 바퀴자국 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나는 월남 여자가 내려왔던 길을 계속 올라갔다 길 끝에는 대학 기숙사가 있었다.

-『어깨 위의 슬픔』중에서
김승강 시집 / 도서출판 경남 / 2017
두 대의 자전거가 서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얘기하는 이 시에서 낯설은 구석은 전혀 없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월남으로 곧장 내달았다”란 구절에서도 개연성은 있다.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이러한 것들은 낯 선 대비가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한 대비들이다. 정확한 묘사인데도 이 시가 낯설은 이유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전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시인이 썼지만 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독자들이다.

<함성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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