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비 '저가업무수주' 관행 사라져야 건축에 희망있다

덤핑수주 후 설계비 보전 위해 ‘무리한 설계변경’
건축계 복마전 오명 쓰게 할 우려
건축사협회 “설계비 제값받기에 동참해
시장정상화하고 경쟁력 확보해야”

# A건축사는 5월 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 용역 개찰결과를 조회해 보고 깜짝 놀랐다. 모 시의 시설 건립공사 설계용역에 지역의 한 건축사사무소가 예정가격 30%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에 낙찰돼서다. 설계용역입찰공고상 예정가격 기초금액이 2억 9천여 만 원이었는데, 입찰금액이 8천만 원이 조금 넘었다. 예정가격 대비 28.4%다. A건축사는 “용역내용을 보면 외주비 등을 감안할 때 도저히 제출한 가격으로 업무수행이 불가능하다”며 “또 무리한 설계변경 등으로 설계비를 보전하려 할 테고 이렇게 되면 건축사업계 전체가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건축물 안전과 국민안전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개탄했다.

일감부족,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일부 건축사사무소에서 자행되는 무리한 덤핑 입찰이 자제돼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기존 경쟁의 틀에서 시장진입이 어렵다보니 발주처의 최저가격 입찰조건에 맞장구쳐 가격경쟁에 나서는 것인데, 이것은 곧 부실설계와 건축물 안전과도 연결돼 문제가 심각하다고 건축사들은 입을 모은다. 덤핑수주는 정상적인 건축사사무소는 물론 최종 국민들로 그 피해가 확산되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 이에 대해 출혈경쟁도 불사하며 제 살을 깍아 먹는 폐해를 없애기 위한 건축사업계 공동의 합의와 노력이 가장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처럼 설계비 저가 덤핑수주 행태는 업계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경우 후유증이 심각해진다. 상식적으로 100원짜리 설계비용역을 40원이나 50원으로 하려면 업무수행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누락되거나 부실이 유발될 수 밖에 없다.
A건축사는 “발주처 최저가격 입찰 조건에 맞장구쳐 예정가격의 약 30%로 입찰해 낙찰되는 회원이 있는 한 ‘이런 가격으로 입찰하는 건축사도 있어요’라는 발주처의 대답에 멋쩍게 발을 돌릴 수 밖에 없다”며 “최근 정동영 국회의원이 공공발주사업에서 적정 대가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에서 우리 건축사들 스스로의 설계비 제값받기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건축사업계가 희망을 갖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 설계변경, ‘공사비 보전목적, 민원해소 차원’에서 이뤄져

사실 사업수행 중 이뤄지는 설계변경은 본래 목적보다 공사비 보전, 설계부실, 민원해소, 발주자의 부당한 요구 등의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건설클레임의 역할과 활성화 방안(이석묵, 1999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공과정 중 설계변경 처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설계변경을 하는 이유로 ▶ 공사비 보전목적(26.9%) ▶ 설계부실(26.9%) ▶ 시행자의 사업계획 변경(23.1%) ▶ 민원해소 차원(17.1%) ▶ 발주자·감리자의 부당한 요구(3.2%)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설계비 덤핑수주를 하게 되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무리한 설계변경 등의 꼼수를 강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덤핑수주 관행의 후유증이 해당 건축사사무소에서 그치지 않는 데 있다. 이는 낮은 수익성 보전을 목적으로 한 무리한 설계변경으로 이어지고 해당 사무소 경영압박, 설계인력 이탈, 설계의 질을 저하시킨다. 나아가 사무소 고정인력 축소, 대부분의 설계 등 업무를 외주처리 하는 등 시장을 비정상화해 건축사업계 전체를 멍들게 한다.
건축사협회 이남식 기획정책국장은 “출혈경쟁에 따른 설계대가 하락 등의 부작용이 시장 전체에 만연되면 이는 해당 건축사사무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를 벼랑 끝으로 몰게 된다”며 “지속적 성장과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 제값받고 설계업무를 수행하는데 협회를 중심으로 건축사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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