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꽃이다. 
하늘의 별이다.

요즈음은 병원 가기가 쉽지만 나 어릴 때는 병원은 커녕 약도 접하기 어려워 아프면 그냥 낫기를 기다렸다. 한 번은 감기에 걸려 밥도 못 먹고 누워 있는데 누가 컴컴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이마에 손을 얹어 보고는 걱정 어린 말을 몇 마디하고 나가는데 잠결에도 어머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께서 작년 4월 식사를 못하시게 되어 충주에 있는 병원에 입원 하셨다. 입원이 길어지자 병원과의 마찰도 생겼다. 이 과정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 살아계심으로 생기는 일이라 생각 하니 견딜 수 있었다. 어머니는 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셨지만 폐렴까지 걸려 상태는 더 나빠지셨다. 올 4월 중순  중환자실로 가시게 되었고 이어서 산소농도가 떨어져 호흡이 곤란하니 ‘인공호흡기’를 달 것이냐고 전화가 왔다. 작년에 어머니께 생명연장 장치는 하지 않기로 5형제와 누나가 합의를 하였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두면 오늘 저녁 어머니께서 임종을 맞을 것 같은 위기감에 누구하나 선뜻 반대는 못하고 이후의 일에 대해 걱정을 했다. 우선 어머니를 살려 놓고 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지만 그 결정이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까지 큰 고통 속에 사시게 할 줄 몰랐다.
허둥지둥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입으로는 무엇을 말씀을 하시려고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입을 조금도 벌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인공호흡기를 뗄까 염려되어 두 손을 침대에 묶어 둔 상태였고 간호사는 얄밉게도 내게 손을 묶어도 좋다는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서류를 내밀었다. 말로만 듣던, 절대 인공호흡기는 달아서는 안 된다는 세간의 떠도는 말이 무엇인지를 실감하는 순간 이었다. 
어머니의 인공호흡기와의 사투는 참담하고 처절했다. “어머니 어디 불편하세요?” 하고 여쭤보면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 하셨지만 그 불편하고 괴로운 심정 오죽할까! 내가 뭔가를 자꾸 여쭤보면 어머니는 무슨 말을 하시려 입을 오물거리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시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머니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치고 수없이 외쳐도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것에 대한 회한(悔恨)은 가시질 않았다.
병원을 나와 청주 집으로 오는 길, 고향집에 들러 어머님이 평생 사셨던 집을 둘러보니 집 주인은 없어도 햇살은 고요히 뒤란에 깃들고 매화는 홀로 피었다가 졌다. 마음은 무거운데 차창 밖 언덕의 복사꽃이 참 좋았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어머니. 이 봄, 꽃이 지천인 이 봄 언덕의 화사한 복사꽃이 야속했다. 결국 어머니는 장미꽃이 한창인 지난 5월 중순에 97 세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 감내할 고통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나중엔 어머니께서 빨리 돌아가셨으면 했다. 말의 홍수 속에서 말을 하느냐 않느냐는 어떤 사람에게는 선택사항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말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절실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하시려 했던 그 한 마디가 무엇인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어머니 구순 생신 때 나는 걸개 하나를 만들어서 식당 벽에 걸었었다. 그 걸개에는 이렇게 썼다. ‘엄마는 꽃이다’ 그랬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꽃이다. 하늘의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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