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를 시작한지 근 20년... 그 어느 때 보다도 부푼 가슴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새내기 건축사.
처음 내가 내디딘 사회는 맨몸이었지만 젊음이란 아이템(item) 하나로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사회는 경험이라는 노하우(knowhow)를 한쪽어깨에 차고 대한민국에서 인정하는 건축사라는 자부심을 두 주먹에 꼭 쥐고서도 한없이 부담스러운 전장이 되고 말았다.
“이 전장에서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멈출 수 없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강인한 어깨와 절대 꺽이지 않는 의연함으로 이 전장이 고스란히 나의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준비하고 달릴 뿐이다. 이제 시작인 내 인생의 길은 너무도 길고 험난하기에...
2017년 1월, 아침바람은 여전히 내 볼을 할퀴는 추운겨울 이었지만 내 가슴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기분 좋은 칼바람을 맞으며 나의 전장 인터플래닝 건축사사무소로 향한다. 나는 드디어 나의 전장 앞에 섰다. 지난 20여 년 잘 다듬어진 나의 검은 세상 어떤 것도 한 칼에 베어버릴 것임을 의심치 않으며... 지난 나의 모든 시간들을 되새기며 힘차게 검을 뽑는다. 하지만 뽑은 검 한번 휘두르지도 못 한 채 큰 벽 앞에 섰다. 바로 수주(受注)업무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무력화시켜버리는 벽. 나의 전장은 이 벽을 넘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마침내 넘어 두고두고 회자되는 소주 한잔의 안주거리로 만들어 버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이 만들어준 전장에서 나의 아이템은 큰 힘을 발휘하며 나를 지켜왔다. 하지만 지금 난 오롯이 나의 전장을 갈망한다. 오롯이 나의 전장. 이것은 대한민국 건축사로서의 존재의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남의 전장에서 나의 칼을 쓸 것인가? 나의 전장에서 나의 칼을 쓸 것인가? ‘건축사’라는 검으로 벨 수 있는 많은 것들 중 나는 무엇을 벨 것인가? 그것이 꼭 건축설계 여야만 하는 것인가? 수많은 전장 중 ‘건축사’라는 검이 가장 강력한 아이템(item)이 되는 전장을 찾고 싶다. 그리고 그 전장의 주인이 되고 싶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갈림길 그리고 선택.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득한 그 어느 때부터,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돌이킬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꿔버리고 싶은 그 어느 때까지도 해야만 했던... 그리고 해버린 선택. 그 모든 선택의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리라 믿으며 지금도 조심스레 하나의 선택을 한다. 이제 나의 선택은 이좌영의 선택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축사 이좌영의 선택이 될 것이다.
나는 기도한다. 나의 검이 나만을 위한 검이 되지 않기를.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아이템(item)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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