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 최규승


저수지를 보았다 하고
시작하는 시를 보았다 하고
쓰는 시인을 보았다 하고
고개 숙인 여자를 보았다 하고
놀라는 아이를 보았다 하고
달리는 개를 보았다 하고
차를 모는 운전수를 보았다 하고
퇴근하는 회사원을 보았다 하고
잠을 자는 남자를 보았다 하고
거짓말을 하는 친구를 보았다 하고
자살하는 학생을 보았다 하고
눈을 감는 노동자를 보았다 하고
물을 주는 노인을 보았다 하고
떠벌이는 맹인을 보았다 하고
하고많은 하고를 보았다 하고

 

-『끝』최규승 시집 / 문예중앙 / 2017
이 시집 『끝』은 별다른 제목 없이 #넘버로 1부터 298번까지 주욱 나열되어 있다. 각각의 번호는 독립된 시이기도 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한다. 이 시의 처음 문장은 액자처럼 “보았다”는 진술이 거듭된다. 이 거듭된 액자를 괄호로 묶어보면 (((저수지를 보았다)하고 시작하는 시를 보았다) 하고 쓰는 시인을 보았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의 문장부터는 “하고”가 여자-아이-개-운전수-회사원-남자-친구-학생-노동자-노인-맹인으로 나열되다가 끝은 “하고많은 하고를 보았다”로 맺는다. 나열이라고 말했지만 굳이 한다면, 액자처럼 괄호로 계속 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인형 안에서 인형이 계속 나오는 러시아 인형처럼 우리가 이것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사실 저것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런 때 우리는 어쩔 수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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