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말
- 박정대

토리노의 말이 울고 있다

하염없이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 아래서 
토리노의 말은 침묵으로 세계를 운다

내가 토리노의 말을 타고 안개 낀 들판을 다 지나와 이 세계의 풍경은 다시 결성된다

창문이 달린 내면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폭풍처럼 울고 있다
  
폭풍은 단단한 신념, 침묵으로 가는 물질

토리노의 말이 울고 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침묵에 갇힌 세계가 
하염없이 자신을 울고 있다

 


-『체 게바라 만세』중에서
박정대 시집 / 실천문학사 / 2014
시는 자연을 노래 할 수도 있고, 인간 정신의 근원에 대해 노래 할 수도 있다. 콘크리트 숲을 노래 할 수도 있고 악덕에 대해 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과 그 인간이 만든 대상물에 공감을 표할 수도 있다. 박정대의 시는 대부분 인간이 만든 ‘문화’에 대해 읊고 있다. 이 시 역시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 <토리노의 말>에 대한 느낌을 시로 옮긴 것이다. 1889년 철학자 니체는 토리노에서 마부에게 얻어 맞는 말의 목을 껴안고 운다. 니체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후 10년을 니체는 정신병자로 살다 죽었다. 신이 없는 세계와 인간이 발 딛고 살아야 하는 폭풍이 몰아치는 세계, 그 중음신의 공간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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