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도시(마을) 가꾸기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그 지역의 문화·역사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다

온 세상에 꽃이 지천이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이제 그 자리를 4월에 넘겨주어야 할 것 같다. 꽃도 피는 순서가 있었는데 요즘은 며칠을 사이에 두고 일시에 폭발하듯이 피어 우리의 눈을 일순 즐겁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씩 나누어 피어 오래도록 즐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매년 봄 청주건축가회에서 개최하는 ‘청주시민건축학교’가 올 해로 14회를 맞았다. 이론 강의와 답사를 병행하는데 4월 첫째 주 토요일에 ‘대구근대로(近代路)’를 답사했다. 다섯 개 코스 중 주로 ‘2코스’를 걸었다. 2코스는 2012년 건축사협회 ‘주거복지위원회’ 담당이사 시절 도시재생을 주제로 세미나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주거복지위원회 위원과 대구건축사회 여성위원회 합동으로 답사를 했던 코스였다. 5년이 지났지만 당시 대구건축사회의 세심한 배려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2코스는 청라(靑蘿) 언덕에서 시작 된다. ‘청라’는 푸른 담쟁이라는 뜻이다. 이 언덕은 ‘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선생의 짝사랑이 서린 곳이라고 문화해설사는 말한다. 우리 일행 40여 명은 해설사의 선창에 따라 ‘동무생각’을 합창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 백합은 없었지만 때마침 만개한 벚꽃과 선교사 주택이 어우러진 청라언덕에서의 뜻밖의 합창은 우리들을 감격하게 했다. ‘3.1만세 운동길’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90계단을 내려와 계산성당, 이상화고택, 서상돈고택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걷기는 일제에 항거한 위인들의 역사의 숨결과 일제의 만행이 교차되어 기분이 묘했다.
경상감영 옆 대구근대역사관을 끝으로 우리는 답사를 마쳤다. 문화해설사는 “저는 간경화(肝硬化)가 아니고 김경화였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친절하고 목청(?) 좋고 유쾌한 문화해설사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골목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동안 급격한 도시화는 새로운 택지 개발의 양적 팽창과 골목을 허무는 재개발을 불러 수 십 년간 쌓인 삶의 흔적들을 훼손 시켰다. 기존의 도심, 부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가운데 기존의 주거지에 다가구 주택이 난립하여 조금만 손을 보면 훌륭한 정주(定住)조건을 갖추었을 주거지가 훼손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다시 골목이 그리워져 골목길을 찾는다.
지난 겨울에 다녀왔던 통영의 ‘동피랑 마을’도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정주조건은 충족 되지 않은 채 가난이 관광 상품이 된 듯 사람들이 몰려와 북새통이다. 지역주민의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마을 아래 시장은 붐벼 다른 사람들만 배를 불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마을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이 더 나을지 모르겠지만 살고 싶은 도시(마을) 가꾸기는 주민자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물리적 시설로서의 마을 가꾸기가 아니라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그 지역의 문화·역사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지역주민의 삶이 더 좋아지고 어린이들의 왁자한 소리가 골목에서, 마당에서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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