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보다 요지경인
아파트 관리 실태
노년 건축사의 재능기부
적합하나 혁신은 어려워


인생 70을 맞으면서 재능 기부할 곳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에 참여하려 했다. 그간에도 30여 년 간, 10여 명의 정신지체아들을 돌보는 신체장애 목사님을 도와 현재 6곳의 복지시설을 둔 법인으로 발전시키며 건축분야에 봉사하고 있으나, 그곳은 복지사들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내 주차공간에 비가 새기에 이를 항의하러 갔다가 70평생 처음으로 아파트의 동 대표와 건축이사가 되었고, 회장의 유고로 6개월 만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피선되었다. 모두가 말렸지만 한 사람을 위한 집짓기운동보다는 5,540세대 2만여 주민을 위한 일이 더욱 보람 있을 것 같았고, “몇 년 전 비리아파트로 신문에 대서특필된 우리아파트를 정화하는 데는 당신 같은 신참으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사들의 부추김에 우쭐한 결과였다.
취임 후 공약대로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공사비를 전년 대비 반 이하로 줄이고 용역비도 입찰조건을 완화하여 수억 원을 경감시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주민과 상호소통을 위한 소식지 발간은 ‘비용을 광고비로 충당한다’해도 ‘왜 주민 돈으로 해야지 광고비로 충당하느냐’는 견강부회로 석 달 간 부결되었다. 인력경비로 인한 경비비가 많다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같은 시기와 규모의 아파트를 조사해 보니 이미 8년 전에 기계식으로 바꿔 경비비가 우리아파트의 1/3 이었다. 마침 통신사들이 12억 원이나 소요되는 감시카메라를 무료설치 후 관리비조로 5년간 받아가겠다는 획기적 조건을 제시하여, 주민들의 별도부담 없이 가구당 연간 평균 86만원을 절약하는 획기적인 안으로 입주자대표회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주민투표를 앞두고 경비용역사는 계약과 달리 조직적 반대시위를 매스컴과 함께 하였고, 회장 경쟁자였던 사람은 홍보게시물을 떼어 내면서 동조하였다. 이러한 기류는 SNS를 타고 모인 집회에서 사실과 다른 부정적 말이 전문가의 입에서 나옴으로써 본질과 다른 부정부패의 시각으로 집행부를 보게 되어 추진동력을 잃었다. 휴대폰이 녹음기능으로 더 많이 쓰이는 세상, 다수의 내편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 이토록 신기한 세상 체험 6개월이 지내다 보니, 퇴임 날 “비리 아파트 이렇게 달라졌다”란 인터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공자님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不亦君子乎』라 하였고, 이에 대하여 주자(朱子)는 『서운해 하지 않는 것은 역(逆)이어서 어렵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소인에겐 어려운 정도가 아닐 테지만 용기를 잃지 않으려 한다. 개혁은 쉽 잖은 것이니까.
아파트관리사무소 가는 길에 환하게 핀 백목련을 보면서 정호승 시인의 “벗에게 부탁함”의 한 귀절을 외워본다. “벗이여 /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 올 봄에는 / 저 꽃 같은 놈 /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해다오 / 나는 때대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