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경주 지진 여파로 학교 내진보강 공사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교육부는 작년 9월 올해부터 학교시설 내진보강 사업의 조속한 완료를 위해 예산지원을 매년 2,000억 원 수준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학교시설의 내진보강 사업 완료에 소요되는 총 기간을 67년에서 약 20년으로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전국 학교시설 내진보강사업 건수는 매년 증가추세다. 교육시설재난공제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전국 학교시설 내진보강사업은 총 264건으로 2014년 54건, 2015년 65건, 2016년 145건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경우 향후 18년간 매년 400억 원을 투자해 2034년까지 전체 학교건물을 내진보강한다는 계획이다. 내진보강대상 2,534동 총소요액 7,154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이다.
최근 열린 ‘학교시설 내진보강사업 선진화를 위한 관계자 워크숍’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내진보강 사업계획을 밝히며, 3단계 ‘내진보강설계’ 시 수행하던 공법선정을 2단계 ‘내진성능평가용역’ 단계로 옮기며 보강설계용역을 선정된 공법으로 종전 ‘중간설계, 실시설계’에서 ‘실시설계’만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보강설계용역 과업범위 축소로 예산절감 및 사업기간을 단축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은 엄연한 공공 발주기관의 불공정 갑질에 해당한다. 보통 공공기관이 설계용역을 발주하면서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에 따라 계획설계, 중간설계, 실시설계 단계를 따라야 하지만, 실제론 실시설계만 발주하고 계획·중간설계 업무까지 함께 떠넘기곤 한다. 설계변경으로 공사비는 일부 증액해주지만, 설계비는 올려주지 않는 것은 예삿일이다. 기존의 설계대가를 그대로 유지하는 선상에서 내진관련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고 있는 예산에서 쪼개다 보니 설계량을 실시설계로 줄이고 중간설계 부분의 예산을 내진관련 예산으로 전용하는 것이 교육청의 꼼수이고 사태의 본질이다.
건축은 수많은 분야가 유기적으로 통합 조정되는 것이 기본인데 서울시교육청 계획대로라면 보강설계 시 건축사의 역할은 단순 마감설계로만 제한될 것이며, 이로 인한 건축사의 총괄자 역할은 무색해져 책임과 안전에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교육청은 건축물 설계·감리에 있어 기본설계안은 교육시설 관련 학술분야 전문기관이, 감리는 교육청 공무원이 수행하는 현실이다.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관계업자들과 싸게만 짓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내진보강사업에서 건축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이는 곧 학교건물 안전을 튼튼히 하는 길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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